삼성이 향후 3년간 240조원 투자와 4만명을 고용하기로 했다. 지난 201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복귀 이후 내놓은 발표보다 60조원이나 증가한 수준이다. 이는 이 부회장이 가석방 후 11일 만에 내린 결단으로, 정·재계에서 거론되는 ‘이재용 역할론’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위기 때마다 대규모 투자로 경쟁 업체를 압도하는 삼성의 힘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엘지전자와 삼성전자에서 각각 근무한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육성 경영전문 컨설턴트 박광수 칼럼니스트의 경험과 에피소드가 이 질문에 답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전직 삼성맨의 삼성이야기

<4>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혁신·파격’ 아이콘 삼성 이건희
  부친 권유로 어릴 때부터 日 유학 
  깊게 생각·끝장 보는 성격 형성돼
  전통 깨고 3남이 이병철 회장 승계

 

  불량품多 삼성전자 현실 보고 ‘충격’ 
  혁신 강조 ‘프랑크푸르트 선언’ 발표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라” 변화 주창
  디자인 혁신에 ‘이건희 휴대폰’ 탄생
  취임 30년 만에 매출액 40배 성장

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 40여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해외주재원 및 관련 분야를 망라했다. 삼성전자 퇴사 후 미리넷과 태평양 임원 등을 역임했다. ⓒ천지일보
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 30여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삼성전자 퇴사 후 미리넷과 태평양 임원 등을 역임했다. ⓒ천지일보

이건희 삼성 회장은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과 어머니 박두을 여사의 3남으로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혜화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인 1953년 “선진국인 일본을 배우라”는 부친의 권고로 유학을 가게 된다. 당시 일본에는 장남인 이맹희 제일비료 회장(현 CJ그룹)이 도쿄대학교 농과대학에 재학 중이었고 2남 이창희 새한미디어 회장은 와세다대학 경제학부에 재학 중이었기 때문에 세 형제가 동경의 한 집에서 유학을 하게 됐다.

◆레슬링 빠진 이건희, 승부사 되기까지

하지만 이미 성년인 형들과 달리 초등학생이었던 이건희 회장은 학교 내에서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따돌림을 당하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됐고, 이는 깊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성격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줬다.

또한 당시 프로레슬러 역도산 선수가 당수 하나의 기술로 일본 선수들을 쓰러뜨리는 경기를 TV로 보며 레슬링에 매료된 이건희 회장은 후일 서울 사대부고에서 레슬링 선수로 활약 하기도 한다. 이를 계기로 이건희 회장은 레슬링협회회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레슬링 종목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올림픽 금메달 효자 종목으로 키워냈다.

이건희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 3년간 날밤을 새며 약 1300여편의 영화를 감상하기도 했는데 이는 한 곳에 몰두하고 집중, 끝장을 보는 성격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에서 와세다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한 이건희 회장은 선진국에 대한 폭넓은 사고와 식견을 쌓고 귀국한다.

이건희 회장은 1966년 동양방송 이사로 입사하고 1979년 삼성물산 부회장을 거쳐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한국의 오랜 전통인 장자 승계 원칙을 깨고 이병철 회장의 후계자로 낙점된다. 이후 1987년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승진,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다가 같은 해 이병철 회장 별세 후 그룹 사장단의 추대로 1987년 11월 삼성그룹 회장으로 선임된다.

회장 취임식에서도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가 지금껏 쌓아온 훌륭한 삼성의 전통과 창업주의 위업을 계승해 이를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하는 동시에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향후 10년 내 삼성그룹을 초일류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방한다. 더불어 첨단산업 육성과 해외사업 확대로 국제화를 가속시킬 탁월한 인재를 발굴해 나간다는 삼성그룹 제2의 창업도 선언한다.

그는 실제 회장 취임 후 국내 일류 회사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에 진출해 향후 백년간 삼성그룹의 미래를 위해 임직원들의 혁신과 변화를 수십 차례 강조하면서 초일류기업에 대한 준비를 해 나갔다.

ⓒ천지일보 2021.9.23
ⓒ천지일보 2021.9.23

◆삼성에 ‘혁신·파격’ 부르짖은 이유는

1990년대 초반 이건희 회장은 전 세계 전자 시장을 직접 돌아보면서 놀라운 현실을 눈으로 확인한다. 삼성전자가 수출한 제품이 판매가 안 돼 바이어의 창고에서 먼지가 쌓인 채 무더기로 있는가 하면 불량품도 많아 쓰레기 취급 받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이는 이건희 회장으로 하여금 이러다간 수출로 이익을 본 것보다 불량품에 대한 반품 비용이 더 커서 삼성전자가 적자 누적으로 망할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7일 삼성전자의 핵심 경영진과 현지 주재원 200여명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킨 호텔로 불러 신경영을 선포한다. 바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핵심은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류 회상에 머무르게 될 것, 지금부터 혁신해 변해도 잘해야 일점오(1.5)류 회사다, 철저하게 변해야 일류가 된다는 내용으로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라, 극단적으로 농담이 아니라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명언도 당시 나온 말이다.

이후에도 그는 “놀아도 좋으니 뛰는 사람 뒷다리 잡지 마라” “회장인 나부터 솔선수범해 바꿀 것이니 여러분도 바꿔라. 바뀌지 않을 사람은 그냥 앉아 있어라” “천재 한사람이 10만명을 먹여 살린다” “21세기 전쟁의 승자와 패자는 누가 먼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이를 선도하는냐에 달려 있다” 등 임직원들에 변화를 거듭 주창했다.

또한 이건희 회장은 많은 제품을 생산해 수출을 하는 ‘양(良) 경영’ 보다 성능이 탁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해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질(質) 경영’을 강조했다. 특히 불량 제품을 우리 신체로 비유하자면 ‘암 덩어리’와 같다며 철저히 개선할 것을 지시했다.

이건희 회장은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선언했던 ‘탱크주의 정신’도 강조했다. 이는 10년 이상 사용해도 불량이 발생하지 않는 튼튼한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판매 한다는 의미로, 당시 이 같은 제품으로 전 세계 전자 시장에서 크게 어필하고 대우전자라는 브랜드 가치를 알린 사례를 든 것이다.

또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디자인도 강조했는데 이는 당시의 이건희 회장의 발언이다.

“앞으로 세상에 디자인이 제일 중요해진다. 개성화로 간다. 자기 개성의 상품화, 디자인화, 인간공학을 개발해서 성능이고 질이고는 이제 생산기술이 다 비슷해진단 말이야. 앞으로 개성을 어떻게 하느냐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

이후 이건희 회장은 디자인 인력을 확대하고 글로벌 디자인단의 자문을 받아 들였다. 일본 소니를 이긴 배경에도 이런 ‘디자인 혁명’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건희 회장은 이후 삼성 휴대폰 제품 개발 및 디자인에도 크게 개입하는데 이에 따른 결과로 2002년에는 단기간에 천만대 판매를 달성하는 일명 ‘이건희 휴대폰’이 탄생하기도 했다.

(출처: 삼성전자)
(출처: 삼성전자)

◆매출액 40배 키운 거목

이런 경영혁신의 노력은 스위스 로잔과 영국 런던까지 이어지며 일본 오사카와 후쿠오카에서는 삼성전자 부장급 이상 중요 간부들과 밤샘 회의를 통해 신경영의 의미를 깨우쳤다. 일설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과 임직원들과 대화 시간만 350시간, 정보량으로 보면 A4 종이 8500장에 달할 정도의 양이다.

이런 경영철학을 밑바탕으로 이건희 회장은 취임 30년 만에 삼성전자의 매출을 40배 성장시킨 400조원까지 끌어올린다. 향후 백년 내 한국 경제계에 이건희 회장과 같은 훌륭한 경영자가 나오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끝으로 28년 전 삼성의 미래를 예측하고 변화를 강조한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삼성이 한국 경제사회의 주춧돌 역할을 잘 수행하고 글로벌 시대를 맞아 전 세계 방방곳곳에서 창업 정신 중 하나인 ‘사업 보국’을 실천하고 삼성인의 정신을 심는다면 이건희 회장 역시 하늘에서 밝은 미소로 삼성인들의 활약을 지켜볼 것으로 기대한다.

(정리 = 이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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