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016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그를 상징하는 색색의 블레이저를 입고 베를린에서 매주 열리는 각료 회의를 이끈 모습. (출처: 뉴시스)
2009~2016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그를 상징하는 색색의 블레이저를 입고 베를린에서 매주 열리는 각료 회의를 이끈 모습. (출처: 뉴시스)

26일 총선 메르켈 출마 안해

차기 총리 숄츠 vs 라셰트

퇴임 불구 높은 인기 지속

독일인 52% “獨 황금기 지나”

유로화·난민 위기 평가 갈려

[천지일보=이솜 기자] ‘유럽의 닻’ ‘서구 자유주의의 마지막 수호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67)가 오는 26일 총선을 기점으로 16년 만에 물러난다.

이번 총선 독일에 새로운 정치 지형이 탄생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보다 더 관심을 끄는 건 메르켈 총리의 퇴임이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 역대 최장수 총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등 숱한 수식어를 만들어 낸 그는 역대 독일 총리 최초로 총리직을 스스로 내려놓으면서 마지막 ‘최초’를 더했다. ‘독일의 영원한 총리’로 불리는 메르켈. 그가 이번 총선에 출마했더라면 5번째 임기를 얻었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메르켈 총리의 유산은 복잡하다. 일부는 그의 겸손하고 합의 위주의 정치 스타일에 박수를 보내지만 공격적인 러시아와 중국 앞에서 과감한 지도력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리아 난민 사태와 기후 문제에 있어서도 평가가 갈린다.

◆‘콜의 소녀’가 ‘정치 킬러’로

메르켈 총리는 1954년 7월 17일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86년 양자 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과학자로 일했다. 공산주의 동독으로 이동한 한 목사의 딸 메르켈에게 정치의 세계를 열어준 것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였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2019년 하버드대 연설에서 메르켈 총리는 과학 연구소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매일 어떻게 벽을 지났는지 묘사했다. 메르켈은 “베를린 장벽이 나의 기회를 제한해왔다. 말 그대로 내 앞을 가로막았다”고 회고했다. 장벽 붕괴 당시 35세였던 메르켈은 “한때 어두운 벽만 있던 곳에서 문이 열렸다”며 “나도 그 문을 통과할 때가 왔고, 이 때 과학자로서의 일은 뒤로 하고 정계에 입문했다. 정말 신나고 마법 같던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990년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며 남성이 우세한 기독민주당(CDU)에 입당했고 당시 헬무트 콜 총리에 발탁돼 통일 독일의 여성청소년부 장관, 환경장관, 원자력부 장관 등을 지냈으며 2000년부터는 기민당 최초의 여성 대표에 선출됐다. ‘콜의 소녀’라는 별명을 얻은 메르켈은 1999년 그의 스승인 콜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며 독일 정치인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당시 기부 스캔들을 겪던 콜이 자신과 당의 신뢰도를 깎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콜은 후에 메르켈 총리가 자신에게 등을 돌린 결정에 대해 “내가 킬러를 데려왔다”며 “내 팔에 뱀을 얹은 꼴”이라고 비난했다.

◆평가 엇갈리는 주요 사건들

2005년 메르켈이 이끈 CDU가 가까스로 총선에서 승리하며 총리직을 얻었으나 메르켈 내각의 장기 집권을 예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메르켈은 비교적 안정된 시기에 취임했으나 유럽이 곧 잇따른 위기에 시달리게 됐다.

유로존의 부채 위기가 2009년 말에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메르켈 총리는 유럽의 통화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이끌어냈다. 그는 “만약 유로화가 실패한다면, 유럽도 실패한다”고 주장하며 사태에 적극 개입했다. 그는 그리스 등 유로존 국가들을 상대로 강력한 구조개혁과 긴축정책을 실시하도록 압박했고, 이는 독일과 유로존이 실존적 위협에 직면하는 것을 막아섰다. 메르켈은 최근 이를 두고 총리로서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평가했다.

아마도 메르켈 정치 경력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2015년 유럽에 도착하는 난민들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일 것이다. 많은 난민들이 시리아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위험한 여행을 선택했고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문을 열었다. 그해 8월 난민 센터를 방문한 후 논평에서 그는 독일 국민에게 “우리는 할 수 있다(Wir schaffen das)”고 장담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의 난민 친화적 정책은 유럽을 분열시키고 독일의 극우세력에게 공격을 받았는데, 이 때 극우세력은 입지를 굳혀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세계가 전염병이라는 획기적인 위기에 직면했을 때 메르켈 총리는 비교적 분명하고 솔직한 의사소통을 보였다. 일부 세계 지도자들이 주저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 그는 과학 주도의 접근을 도입했고, 대유행 기간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메르켈 총리의 지도력을 지지했다.

메르켈의 16년 집권 기간 세계 질서는 변화가 있었다. 미국은 독일에게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라고 압력을 가했으나 냉전의 아이였던 메르켈 총리는 또 다른 냉전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미국과는 대체적으로 동맹을 지켜왔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 깊어진 갈등이 계속되는 양상이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메르켈이 중국에 대한 자국의 경제적 의존도가 극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감독하고, 러시아와의 광범위한 에너지 협정을 추진했으며, 유럽에서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에 도전하는 데 프랑스에 합류했고 경제 정책과 중국 기술에 대한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07년 6월 7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운데)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이 독일 헤이리겐담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을 위해 모여있다. (출처: 뉴시스)

2007년 6월 7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운데)와 오른쪽부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이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을 위해 모여 있다. (출처: 뉴시스)

◆메르켈 리더십 공백 불가피

다음 주 독일에선 다수당의 새 총리가 새로운 연립 정부의 구성 후 그 절차를 이어받게 된다. ‘포스트 메르켈’ 시대를 열 이번 총선도 결국 ‘메르켈 닮은 꼴 찾기’가 될 전망이다.

메르켈 총리의 뒤를 이을 두 명의 선두 주자인 사회민주당(SPD) 중도좌파 후보 올라프 숄츠와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기민련)의 보수당 후보인 아르민 라셰트는 메르켈 총리의 접근방식을 지지한다. 두 후보 모두 미국의 일부 정책에 비판적이었고 중국, 러시아와의 긴밀한 무역 관계를 선호해왔다. 여론조사는 대다수의 독일인들 사이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의 지속적인 하락을 보여준다.

누가 총리가 되든 당분간은 메르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유럽인들은 이미 메르켈 총리의 퇴임과 함께 독일의 황금기도 끝나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 15일 유럽 외교문제평의회(ECFR)가 유럽연합(EU) 12개 회원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인 응답자 중 52%가 자국이 황금기를 지났다고 답했다. 여전히 황금기라는 응답은 15%에 그쳤다. CNBC는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메르켈 총리 퇴임 후 EU의 리더십에 대한 불확실성이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메르켈 총리 퇴임 후 유럽을 이끌 지도자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꼽히지만 기대치는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0월 한 조사에서는 유럽 14개국의 성인 75%가 메르켈 총리를 이 지역의 다른 어떤 지도자보다 더 신뢰한다고 답했다. 2005년 총리 취임 당시 ‘유럽의 병자’로 불린 독일을 16년간 세계 경제 대국으로 이끈 메르켈 리더십의 공백이 클 것으로 전망되는 대목이다.

메르켈 총리가 퇴임하면 EU의 나머지 국가들과 독일의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도 가장 큰 미지수 중 하나다. ECFR의 최근 보고서에서 정치학자 피오트르 부라스는 “‘메르켈리즘’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독일의 차기 총리는 앞으로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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