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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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올 후반기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반발’로서 남북한 당국 간 통신연락선을 이용한 우리 측의 호출에 응답하지 않은지도 4주가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당초 우려와 달리, 김정은 정권은 이렇다 할 군사적 도발을 자제하면서 특이한 군사적 행보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 대미·대남비난 담화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북한이 이제 달라진 건가? 그냥 문만 걸어 잠그고 내부의 혁신에 주력하겠단 건가? 김정은 총비서는 벌써 두 차례나 평양시 건설현장을 현지 지도하며 평온한 듯한 분위기 연출에 전념하고 있다. 어찌 보면 저게 북한의 본래 모습일 수 있다.

남북 통신연락선은 양측 정상 간 합의에 의해 7월 27일 전격 복구됐다. 7.27의 의미는 북한에서 대단하다. 김정일 시대의 2.16을 넘어선 게 7.27이다. 북한이 남측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차단한 지 13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후 남북은 약 2주간 휴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오후 2차례씩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통한 정기연락을 진행했다. 그러나 북한은 한미훈련의 ‘사전연습’ 격인 우리 군 주도 위기관리참모훈련(CMST)이 시작된 8월 10일 오후부터 정기통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훈련에 대한 불만 표시란 게 일반적인 평가다.

북한은 8월 1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명의 담화를 통해 한미훈련 중단을 촉구한 데 이어, 10·11일엔 각각 김 부부장과 김영철 당 중앙위 통일전선부장 명의 담화에서 “안보위협” “안보위기” 운운하며 한미훈련을 비난했었다. 그러나 이달 16~26일 진행된 한미훈련 ‘본훈련(연합지휘소연습·21-2-CCPT)’ 기간 동안 북한은 오히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국자 명의 담화 등 공식 입장도 나오지 않았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이번 한미훈련이 끝나면 북한이 남북 간 통신선을 이용한 정기통화에 응할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아직은 그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한미가 북한의 ‘훈련 중단’ 요구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이 기존 태도를 바꿀만한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 등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북한은 올 전반기 CCPT 때도 훈련 종료 사흘 뒤인 3월 21일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을 2발 쐈고, 3월 25일엔 동해상으로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신형전술유도탄·KN-23 개량형) 2발의 시험발사를 단행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국가방위력 강화에 대한 과제를 올 초(제8차 당 대회) 천명했기 때문에 앞으로 1~2차례 군사행보를 보일 가능성을 충분히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북한이 대외적으로 ‘위협’ 메시지를 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내부 과제를 달성하고자 하는 차원의 움직임으로 봐야 할 것이란 지적이다. 북한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중 1년차를 진행하면서 성과를 내는 게 매우 중요한 시점이 다가왔다며 완전한 실익이 보장되지 않는 남북, 북미 등 대외관계에 집중할 가능성이 적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 정부 역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내년 5월까지)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보다는 북한의 도발을 막으며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집중하려 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미국 역시 최근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재 장악 등 다른 현안들 때문에 대북 문제는 일단 ‘현상 유지’ 수준으로 관리하려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즉, 남북한과 미국 모두 ‘정세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란 점에서 당분간 큰 ‘변화’ 없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게 관련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평양의 고뇌는 가뭄과 장마로 강타당한 식량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으로 등장하고 있다. 북한의 곡창 황해도가 가뭄으로 큰 타격을 받은데 이어 북쪽의 함경도 지역은 대홍수로 수천명의 이재민이 길거리에 나 앉은 최악의 상황이다. 군부대가 훈련도 중단하고 수해복구에 나앉은 조건에서 김정은 정권이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일은 격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만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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