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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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임 국립외교원장의 한미 연합훈련에 관한 발언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전임 원장이 소위 ‘가스라이팅’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한미동맹을 깎아내린 데 이어 후임 원장도 취임 직전에 못지않은 궤변을 내놓아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신임 원장은 취임 후에는 백팔십도 태도를 바꾸었다고 할 만한 발언을 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2~3일 만에 입장이 바뀐 것인지, 자신이 한 말을 기억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공인으로서의 신중함이 부족한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국립외교원은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의 역할도 맡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외교관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외교관 교육기관의 장이 외교정책 또는 외교 이슈에 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적절하다. 그러한 의견은 본부의 장관, 차관 등 정책 입안을 직접 맡고 있는 간부가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임 원장은 모 연구소 소속 학자로서 그간 방송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여 평론해 왔는데 국립외교원장으로 내정된 시점부터는 그러한 의견 제시를 자제했어야 했다. 이 점에서 행동이 가벼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음으로 그의 발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그는 “한·미 연합훈련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 입장에서 한·미 연합훈련은 하느냐 마느냐가 문제이며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의 53분의 1, 한국의 군사력은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보다 우수하다” 등 의견을 내놓았다. 그의 의견은 경제력에서 대한민국이 북한을 압도하고, 군사력도 핵무기를 제외한 부분에서는 한국이 우월하고,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서는 미국이 한국에 대해 핵우산을 제공하면 되므로 한미 연합훈련 실시는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으로 읽힌다.

우선 군사력이 경제력과 상관관계에 있는 것은 맞지만 경제력에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군사력에 있어 비경제적인 요소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비경제적인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군의 정신무장과 임전태세인데 이는 반복된 훈련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중국의 국공내전, 베트남 전쟁 및 최근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오히려 경제력이 떨어지고 무기도 상대적으로 약한 쪽이 승리를 거두었다. 과거 중국의 한족 왕조들이 북방민족들에 의해 번번이 유린당한 것도 경제력이 약하고 군비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기강 해이와 부패가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또한, 국가 간 군사적 대결은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핵무기와 재래식 전력을 분리해 접근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접근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재래식 전력은 재래식 전력하고만 겨룬다는 뜻인가? 그리고 가장 명심할 점은 스포츠 경기의 경우 ‘다음 기회’가 있지만, 국가 안보에는 ‘다음의 기회’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북한은 야외 기동훈련은 실시하지 않고 단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도상훈련까지 시비를 걸고 있는데 이는 한국 내 국론 분열과 한미동맹의 균열을 획책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덫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북한이 대내외적으로 적화통일 노선의 포기를 공식 선언하고 행동으로 그 진정성을 보여 줄 때까지는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내려놓거나 북한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군사력이 핵무기를 빼면 별 것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한 매우 잘못된 계산이다.

그리고 소위 ‘진보’ 진영 인사들은 북한의 ‘민족주의적 수사(修辭)’에 휘둘려 국민들로 하여금 주한 미군의 존재를 ‘부끄러운 일’로 여기도록 부추기는 경향이 있는데 미군의 주둔은 애초 북한의 재남침에 대한 억지책으로서 우리가 요청한 결과로서 우리가 콤플렉스를 가질 이유가 조금도 없다고 본다. 오늘날 지구상에 100% 자력으로 자국의 안보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우리는 미군의 우리나라 주둔에 있어 원초적 이유는 북한의 재남침 가능성이라는 점을 대전제로 해 우리의 안보문제를 논해야 하겠다.

신임 국립외교원장은 취임 후에는 내정 발표 이후 한 말에서 백팔십도 바뀐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이제 우리가 북한에 더는 호의를 보일 필요가 없다”라고 하면서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이라도 발사하면 참수·선제 공격, 북한 점령 작전 훈련을 이번 주에 해버려야 한다”라고 했다. 이러한 가벼움을 갖고 외교관 후보생들의 존경을 받는 원장이 될 수 있을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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