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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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북한에 준 데미지는 얼마나 클까? 아무도 측정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은 오늘 북한은 ‘죽음의 행군’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김일성이 죽고 나서 시작한 ‘제1의 고난의 행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0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4.5% 감소했다. 1997년(-6.5%) 이래 가장 큰 폭의 역성장이다. 1997년은 대기근이 있었던 ‘고난의 행군(1994~1999년)’의 절정기에 속한다.

북한 역시 식량난과 경제난을 인정하며 위기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4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제6차 노동당 세포비서회의에서 거침없이 ‘고난의 행군’을 언급했다. 지난 6월에는 “농업 부문에서 지난해 태풍 피해로 알곡 생산 계획을 미달한 것으로 하여 현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무지 약점을 보이려 하지 않는 ‘최고 존엄’의 이례적 발언은 북한의 식량 상황이 그만큼 녹록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은 2020년 1월 30일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대책으로 중국을 포함해 모든 외부접촉을 단절하는 처절한 방안을 선택했다. 그 결과 북한의 2020년 대외 무역 총액은 전년 대비 73.4% 감소한 8억 6300만 달러로 떨어졌다.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는 것은 식량뿐만 아니다. 농사에 필수적인 비료와 비닐박막, 연료 등도 포함돼 있다. 심지어 치약과 미누 등 일반 소비품도 모두 중국으로부터 들어오지 않으면 당장 장마당경제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지난해부터 북한은 흥남비료연합기업소와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의 비료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한 공사를 추진했으나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다. 설비와 자재가 없는데 어떻게 그런 큰 기업소를 리모델링할 수 있단 말인가. 외부의 비료 도입 없이는 농업생산 증대가 어렵지만, 북·중 무역의 중단으로 2020년 비료 수입량은 전년 대비 16%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3월부터는 수입을 재개했으나 예년보다는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여기에 기후변화는 가난한 나라에 더욱 가혹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병, 폭염과 폭우를 오가는 기상 피해는 북한 작황에 치명타를 입혔다.

올해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지난 8일 북한 전역에서 폭염에 의한 가뭄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평양 대학들은 6월 말부터 휴교가 시작돼 학생들이 ‘가뭄 전투’라는 이름으로 지방에 파견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뿐이 아니다. 중앙당 고급간부들까지 가뭄투쟁에 집단적으로 동원돼야 했다. 이들은 기계 없이 수작업으로 우물을 파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여기에 8월 중순 함경남북에 쏟아진 폭우는 한꺼번에 3000여 세대의 주택을 휩쓸고 가는 등 대홍수 피해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이처럼 북한의 경제상황이 악화하고 식량난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마다 이견이 없다. 핵심은 이 같은 ‘위기 상황’이 김 위원장의 리더십에 영향을 미쳐 북한 내부의 붕괴를 가속시킬 것이냐다. 혹은 2019년 하노이 회담 이후 모든 대화의 문을 차단한 북한이 껍질을 깨고 대화의 장으로 나올 변수가 될지 여부다. 실제 북한은 지난달 27일 남북 간 모든 통신 연락선을 복원했다.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하며 판문점 채널을 비롯한 연락선을 차단한 지 413일 만이다.

다만 이 와중에서도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거부하며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이라는 기조를 버리지 않고 있다. 결국 연결됐던 통신선은 얼마 못가 한미훈련 재개와 동시에 다시 두절됐다. 오히려 조건 없는 대화를 촉구하는 한·미에 대응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는 북한의 모습은 대화의 판을 깨려고 하는 기존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미군철수’라는 상투적 조건도 들고 나왔다.

그들은 여전히 한반도의 긴장을 체제 재생산의 호재로 여기고 있음이 드러났다. 김정은 정권에게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민들의 긴장완화이다. 북한 인민들은 배고픔에는 익숙하지만 ‘외부의 적’이 사라지면 즉시 생각이 바뀌게 된다는 것을 지배층은 제일 무서워하고 있다. 그러나 압제의 나날이 벌써 76년, 북한 인민들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김정은 정권은 분명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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