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not caption

잘 익은 술독에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떠내고 그 다음 거르는 술이 막걸리다. 가양주(家釀酒)로 불린 것은 농가에서 직접 양조했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한 식량으로 새참에 땀에 젖은 일꾼들의 목을 축여주는 단비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시인 화인(花人) 김수돈이 ‘신비의 선약’이라고 한 술이 막걸리가 아닌가 싶다.

조선 후기 철종은 강화시절 막걸리가 생각나 강화유수에게 진상토록 했다. 그러나 운반 도중 상하거나 맛이 변해 아예 궁중 사온서(司醞署)에서 빚었다고 한다. 위로는 나라의 지존인 임금으로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귀천 없이 사랑해 온 술이 막걸리다.

막걸리는 조선시대에는 ‘노인의 젖줄’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고려사를 찬술한 문호 정인지(鄭麟趾)가 이름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정인지는 애주가이기도 했는데 그가 좋아한 술도 청주가 아닌 막걸리였던 모양이다.

막걸리에는 ‘다섯 가지 덕(五德)’이 있다고 하여 애주가들 사이에 회자돼 왔는데, 다시 상고해 본다.

첫째는 취하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만취하지 않는 것이 일덕(一德), 둘째 새참에 마시면 요기되는 것이 이덕(二德), 셋째 힘 빠졌을 때 기운을 돋우는 것이 삼덕(三德), 넷째 어려운 일도 마시고 웃으면 풀리는 것이 사덕(四德), 다섯째는 더불어 마시면 노소가 어울려 기분 좋은 것이 오덕(五德)이다. 어떤 글을 보면 값이 싸서 좋다는 것을 첫째 덕으로 꼽기도 했다.

​서거정(徐居正), 손순효(孫舜孝) 등은 당대 문호로 이름을 낸 인물인데 만년에는 밥 대신 막걸리로 식사를 대신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들은 병 없이 장수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막걸리용기는 막사발이었다. 웅천 사기가마에서 구워낸 사발이 일본으로 건너가 가장 비싼 이도다완이 된 것은 유명한 얘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원정 장수가 전리품으로 가져온 막사발을 최고의 보물로 여겨 옆에 두고 살았다. 이 다완은 지금 일본 국보로 지정돼 천문학적 가격으로 평가 받는다.

조선 막사발 수요가 퇴조하자 근세에는 찌그러진 양재기에 부어 먹는 맛이 제격이 됐다. 주막집에서는 일부러 양재기를 두드려 찌그러뜨려 썼다. 거창출신 여류 강미숙시인의 막걸리 시가 이런 정감을 담고 있다.

​찌그러진 양재기에 채워야 제 맛이지/ 목젖에 걸린 갈증이 꿀떡 삼켜드는 저녁/ 땀내 찌든 손으로/ 겉절이 안주 덜렁 집어먹어도 천박하지 않은 술/ 밭갈이하는 봄/ 논두렁에 누운 채 / 얼큰히 취해본 농부라면/ 누룩 같은 빗물이 진종일 쏟아지는 날/ 소 판 돈 몽땅 털어 말 통으로 마셔버리고 말/ 애인 같은 술이지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측의 장외(場外) 설전이 점입가경이다. 이낙연 캠프측은 이 지사의 ‘형수 욕설’을 재론했고, 이 지사 지지자는 이 전 대표의 국무총리 재임 시절 ‘막걸리 정치’를 비판했다.

이 지사 측은 이 전 대표 아내인 김숙희씨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총리 재임 기간 99종류 막걸리를 7000병 정도 마셨을 것’이라고 했던 대목을 문제 삼았다. ‘국무총리 재임 881일 동안 막걸리 7000병을 마셨다면 하루 8병’꼴이라고 했다.

상대 얼굴을 깎아내리는 것이 승리라고 생각하는 캠프 브레인들의 무뇌적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이 전 총리가 막걸리를 좋아했다는 서민적인 풍모를 두둔한 격이 돼 이 지사 측이 판정패 한 셈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