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연합뉴스) 해군 여성 중사가 남성 상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신고를 한 후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3일 중사의 빈소가 마련되는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2021.8.13
(대전=연합뉴스) 해군 여성 중사가 남성 상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신고를 한 후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3일 중사의 빈소가 마련되는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보고 늦은 이유엔 “본인 원치 않아”

법령상 성범죄 ‘보고 매뉴얼’에 허점

생전 업무 배제 등으로 따돌림 받아

전문가 “軍전체의 문제는 아냐” 경계

문대통령 격노·서욱 “유족·국민께 송구”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지난 5월 숨진 공군 여부사관 성추행 사건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해군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또 발생하자 군 당국의 안이한 대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군 상부에 대한 늑장 보고 문제가 또다시 불거진데다 피해자와 가해자 간 분리 조치도 거의 두 달이 지나서야 이뤄져 2차 가해 의혹까지 제기되는 등 여전한 군의 성범죄 대응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서욱, 피해 76일만에 보고받아

13일 해군 등에 따르면 서욱 국방부 장관은 성추행 피해를 신고했던 해군 소속 여중사가 숨진 상태로 발견되기 전날인 이달 11일에야 관련 보고를 처음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 여중사가 당초 피해 사실의 유출을 원하지 않아 상부 보고가 늦게 이뤄졌다는 게 군의 설명이지만, 결과적으로 현행 제도상 허점이 드러난 셈이다.

해군 관계자도 “법령상으론 성추행 사고가 일어나면 (인지 즉시) 보고하게 돼 있고, 훈령상에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보고하지 않도록 돼 있다”고 밝혀 성범죄 대응 매뉴얼에 문제가 있음이 확인됐다.

실제로 피해 여중사가 성추행이 발생했을 당시 처음에는 신고를 원하지 않아 두 달여만인 이달 7일 부대 지휘관과 면담 요청을 해 피해 사실을 보고했고, 이틀 뒤인 9일 피해자인 본인 결심에 따라 정식으로 상부 보고가 이뤄졌다.

11일 해군본부 군사경찰은 부석종 참모총장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각각 보고를 했고, 서욱 장관도 이날 조사본부를 통해 처음으로 서면보고를 받았다. 성추행 발생일인 지난 5월 27일을 기준으로 하면 76일만에 보고가 이뤄진 것이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서욱 국방부 장관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제공: 국회) ⓒ천지일보 2021.7.26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서욱 국방부 장관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제공: 국회) ⓒ천지일보DB

◆가해자 미분리·2차 가해 의혹도

상부 보고가 뒤늦게 이뤄지는 그사이 두 달 동안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이날 공개한 피해 여중사와 유가족의 문자 메시지 내용에 따르면 피해자가 정식 신고를 결심하기 전까지 두 달여 간 가해자인 남성 상사와 분리 조치가 되지 않았다.

사건 이후에도 분리되지 않은 채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는데, 이 과정에서 가해자인 상사의 업무상 따돌림, 업무 배제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뒤늦게 신고를 결심했다는 점에서 2차 가해 의혹도 일고 있는 만큼, 앞으로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군 당국은 피해 여중사의 요청에 따라 이달 9일에서야 그를 육상 부대로 파견 조치해 가해자와 분리시켰다. 그러나 피해자는 소속 부대를 옮긴 지 사흘만인 12일 돌연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군 당국은 현재까지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기 위해 부검을 하려 했지만, 유족 측이 부검 없이 장례식을 치르기를 희망해 결국 15일 발인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이번엔 ‘해군’에서 성추행을 당한 부사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공분이 일고 있다. 사진은 13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해당 사건과 관련한 뉴스를 시청하는 시민 모습. ⓒ천지일보 2021.8.1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이번엔 ‘해군’에서 성추행을 당한 부사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공분이 일고 있다. 사진은 13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해당 사건과 관련한 뉴스를 시청하는 시민 모습. ⓒ천지일보 2021.8.13

◆수사 속도… 가해자 구속영장 청구

합동수사에 착수한 국방부 조사본부와 해군 중앙수사대는 성추행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2차 가해 여부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0일 가해자인 상사를 함대로 불러 조사했고, 11일 입건해 12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14일 오전 중 구속 전 피의자심문인 영장실질심사가 열릴 예정이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군이 할 말이 없게 됐다. 일단 철저하게 수사를 해야 한다”면서 “다만 군의 기강 해이 등 전체의 문제로 매도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군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성감수성이나 일탈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부사관이나 장교 양성과정부터 인성문제, 성 평등 문제를 철저하게 교육하고, 사건 발생 시 신상필벌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나아가 차제에 군 보고 매뉴얼 등도 확실하게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해당 사건에 대해 보고 받은 자리에서 격노하고 엄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정치권에서는 국정조사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야권 측에서는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 등이 국방부 장관 경질론을 제기했다.

서 장관은 “있어선 안 될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유족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작년 9월 취임 이후 일곱 번째로 사과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청와대에서 열린 K-글로벌 백신 허브화 비전 및 전략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제공: 청와대) ⓒ천지일보 2021.8.5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청와대에서 열린 K-글로벌 백신 허브화 비전 및 전략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제공: 청와대) ⓒ천지일보 20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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