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 (출처: 연합뉴스)
알뜰폰.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손지아 기자] 올해 알뜰폰(MVNO) 가입자가 1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알뜰폰 사업자 간 가입자 유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과거 통신 3사가 보조금 지원으로 출혈 경쟁을 한창 벌이던 때와 같은 양상이다. ‘큰 시장’을 이미 독점하고 있는 통신 3사가 ‘작은 시장’인 알뜰폰까지 점유하기 위해 자회사들을 두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알뜰폰 시장이 활성화된 이후 자회사를 제외한 중소 사업자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고사할 것이라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통신사의 알뜰폰 자회사의 점유율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까지 나오기도 했지만 아직 추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알뜰폰과 기존 통신 시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약정이 없기 때문에 가입자들이 자유롭게 가입·해지할 수 있는 구조다. 온갖 사은품·혜택 제공, 경쟁사보다 저렴하게 요금제 가격 내리기 등의 출혈 경쟁이 빠르게 이뤄지는 이유다. 실제 알뜰폰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월 단위로 신규 요금제, 프로모션 등을 내놓고 있다.

이는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통신 3사의 자회사를 통해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 알뜰폰 가입자가 느는 만큼 통신사에서 이탈한 고객이 증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회사를 통해서라도 붙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 아니라 모회사인 통신사에서도 알뜰폰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불법 마케팅이 규제 당국을 피해 주기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통신사의 자회사가 아닌 대부분의 중소 사업자는 규모 면에서 밀리고 있고 통신사로부터 지원을 받는 ‘하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신 시장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을 제외한 KT, LG유플러스가 중소 사업자 지원을 확대했지만 자생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자회사도 같은 지원을 받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같이 되자 통신사의 불법 마케팅과 그 계열 알뜰폰 자회사의 과도한 마케팅이 공정 경쟁을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월 3만원 이내로 사은품을 제공하도록 장려하고 있지만 통신사 계열 알뜰폰 업체는 가이드라인을 사실상 준수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점유율 제한, 시장 감시를 통해 통신사와 계열 알뜰폰을 규제하고 있다. 통신사는 이 상황이 매우 불편하다. 통신사가 정책적인 관점에서 정부의 정책을 가장 효과적으로 지원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의 ‘알뜰폰 시장 활성화’는 본래 ‘가계통신비 인하’를 목적으로 한 정부의 흑묘백묘 정책이다. 흑묘백묘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1970년대 말부터 덩샤오핑(鄧小平)이 취한 중국의 경제정책이다. 즉 고양이 빛깔이 어떻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통신사들이 출혈 경쟁을 통해 이 정책의 목적을 달성했고 시장을 키워 이용자 후생을 더 낫게 해놨는데 이제 와서 규제를 한다는 것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공정 경쟁을 저해하고 중소 사업자의 입지를 좁게 한다는 프레임은 통신사 입장에서는 억울한 처사다.

통신사의 입장도, 중소 사업자의 목소리와 정부의 중재도 비상식적이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없다. 다만 ‘가계통신비 인하’든 ‘중소 사업자 구제’든 통신 시장에서 있었던 선례를 바탕으로 멀리 보고 정책의 방향성을 명확히 해서 알뜰폰 시장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 정책의 취지의 중심인 소비자를 빼놓고 생각하면 안 된다.

공정 경쟁이랍시고 정부가 과도한 제한을 두거나,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중소 사업자가 철수하면 알뜰폰 시장도 현재 통신 시장처럼 암묵적 담합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보조금 경쟁이 활발히 이뤄졌던 과거를 뒤로하고 현재 통신 시장에서 경쟁이 줄고 안정화하자 소비자 혜택이 줄고 지원금 수준이 줄어든 것처럼 이대로 알뜰폰 시장도 통신사 자회사를 중심으로 굳어지게 된다면 사은품, 요금제 경쟁으로 인한 출혈을 결국 소비자들이 다시 메꾸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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