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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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풍랑을 만나 갈 길을 헤매고 있는 큰 배라면 그 운명은 거의 선장에게 달려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풍랑이 이는 바다를 직시하고 바람을 읽으며 하늘의 별을 상상하는 그 무궁한 능력을 기대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선장’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선장으로서의 소명이었다. 과거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친 풍랑을 헤쳐 가는 배는 하나의 ‘국가’로, 선장은 그 국가의 ‘군주’로 비유되곤 했다. 전쟁이 일상이 됐던 국가의 운명, 그 운명을 짊어진 군주의 능력을 이처럼 바다와 배, 그리고 선장의 이미지로 비유했던 것이다.

중국의 고서 <순자(荀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군주민수(君舟民水)’가 그것이다. 백성들이 거친 풍랑으로 변하면 군주도 전복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무려 2200여년 전에 이런 경고를 했다니, 순자의 제왕학은 참으로 무섭고도 위대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리스의 고전 <오디세이아(Odysseia)>도 제왕의 역량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이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환하는 오디세우스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해 거친 풍랑을 헤쳐서 마침내 고향에 도착한다.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압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단순 무식하고 자신의 힘만 믿었다면 오디세우스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굳이 동서양의 고전을 거론하는 이유는 세상이 복잡하고 한 나라가 위기에 처할수록 지도자의 역량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는 어느 시대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이쯤 되면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하나의 ‘철칙’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고대 동서양이 아니라 조선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위기의 시기에 선조와 인조의 무능과 무지는 그대로 백성들의 피눈물이 되고 말았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군주의 역량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역사에서도 확인하고 또 확인했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국민의 건강은 물론이요 민생 자체가 고달프다 못해 암담해 보일 정도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 젊은이들, 생계의 절벽에 서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 그리고 오늘도 하루하루 버티며 살고 있는 국민들의 삶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이 끝이 어디인지도, 또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헤아리기 어렵다. 더욱이 세상 모든 것이 험한지라 국가 간의 경쟁과 갈등은 더 치열하고 각박하다. 참으로 위기의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을 뽑을 20대 대선이 7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차기 대통령은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적인 풍랑을 헤쳐나가야 할 ‘대한민국호(號)’의 선장 격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선점해야 할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최소한 10년 뒤를 보고 결단해야 할 미래성장동력도 ‘선택과 집중’이 절박한 시점이다. ‘백신 산업’의 뒤처진 현실은 뼈아픈 대목이다. 한반도 평화를 항구적으로 만들고 남북의 협력과 통일시대를 이끌어야 할 시대적 소명도 너무나 절박하다. 게다가 경제 양극화의 직격탄을 국민 다수의 경제적 고통은 이루 말하기도 어렵다. 특히 정치가 갈라놓은 ‘진영 간 대결’은 오늘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뉘어 연일 난타전이다. 지겹다 못해 참담한 현실이다.

결국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 그 핵심은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마침 차기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여야 대선후보들의 정치행보도 바쁘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만큼은 치세가 아니라 난세에 어울리는 대통령이 선출돼야 한다는 얘기다. 완벽한 리더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난세를 읽고 작금의 풍랑을 헤쳐 나아갈 수 있는 ‘스마트한 대통령’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으며 국민의 수준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이런 급변의 상황에서 명색이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들이 국민의 상식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그건 비극이 아니라 ‘참사’에 가깝다. 국가적으로 볼 때 오늘의 불행만이 아니라 내일의 피눈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최근 대선에 뛰어든 여야 각 대선후보들의 언행을 보노라면 말문이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위기의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꿰뚫고 있는 스마트한 인물들도 많다. 국민의힘에도 그런 인물들이 있다. 물론 민주당에는 더 많다. 그러나 반대로 구태에 찌들고 권력을 향한 탐욕과 오만에 가득한 꼴불견의 인물들이 더 많다. 시대에 대한 통찰은커녕 국민의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급한 군상들이 오늘도 대선 레이스를 질주하고 있다. 하는 말마다 뜬금없는 억지와 궤변으로 국민의 상식을 짓밟는가 하면, 기본적인 지식조차 갖추지 못한 무지하고 몽매한 인물들이 명색이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현실은 국민이 보기에도 부끄럽고 참담할 따름이다.

비록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지역과 이념, 여야에 의해 ‘진영 간 대결’로 압축되는 비극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그 싸움은 국민의 상식 위에서 전개돼야 한다. 그래야 이 위기의 시대에 ‘대한민국호’를 이끌 수 있는 ‘스마트한 리더’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정치는 이제 그런 수준까지 왔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처럼 군홧발로 좌충우돌하며 날뛰던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급변했다. 더욱이 위기의 징후는 지금이 더 강력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건강한 신념과 반듯한 역사관을 가진 대통령, 국민의 상식과도 소통되는 지적 역량을 가진 대통령, 나아가서는 미래를 더 먼저 통찰하고 더 빨리 결단할 수 있는 ‘스마트한 대통령’을 맞을 때가 됐다. 어쩌면 작금의 시대적 현실이, 오늘의 국민이 그런 대통령을 더 강하게 원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단순 무식하고 무지하며 몽매한 ‘잡놈들의 시대’는 이미 끝났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비록 ‘진영 대결’로 발목이 잡혀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님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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