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평일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치매어르신과 정신장애자들에게 시낭송치유 봉사를, 주말에는 전문주례인으로 활동한 도경원 한국시낭송치유협회장이 코로나19 이후 모든 활동이 중단된 것에 안타까워했다. 도 회장은 시낭송이 치매와 정신장애 치유에 큰 효과가 있다고 빨리 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나 봉사활동이 재개됐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천지일보 2021.8.11
매주 평일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치매어르신과 정신장애자들에게 시낭송치유 봉사를, 주말에는 전문주례인으로 활동한 도경원 한국시낭송치유협회장이 코로나19 이후 모든 활동이 중단된 것에 안타까워했다. 도 회장은 시낭송이 치매와 정신장애 치유에 큰 효과가 있다고 빨리 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나 봉사활동이 재개됐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천지일보 2021.8.11

도경원 한국시낭송치유협회 회장

 

“코로나19로 중단돼 안타까워”

막내아들 잃은 후 ‘터닝포인트’

평일 내내 복지기관서 봉사

주말에는 전문주례인으로 활동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작년부터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놨는데 도경원(70) 한국시낭송치유협회 회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도 회장은 평일이면 요양원, 치매안심센터, 노숙인쉼터 등 여러 복지시설에서 시낭송치유와 말벗 봉사를 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또 주말에는 전문주례인으로 활동해 일주일 내내 다른 개인약속을 잡으면 안 될 정도로 늘 스케줄이 꽉 찼다.

하지만 작년 2월부터 국내에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지금까지 장기화되자 도 회장은 모든 활동이 중단한 탓에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처럼 개인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며 숨고르기를 해보는 것도 괜찮을법한데 그는 그렇지가 않다.

코로나19 이전 그는 치매어르신과 정신장애자들에게 시낭송과 함께 말벗이 되어주면서 치매예방과 마음의 치유 등을 이끌었다. 치매어르신에게 시를 읽으면서 낭독하게 하는 것을 시작으로 외워서 낭송까지 하도록 지도함으로써 실제 치매증상이 나아지는 효과를 봤다. 중증치매환자도 점진적으로 나아지는 효과를 봐왔다고 한다.

또한 치매어르신뿐 아니라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함으로써 치매예방에도 도움을 줬다. 90세가 넘은 한 어르신은 시를 20편 이상 외울 정도며 감정까지 실어 시낭송을 펼친다. 좋은 시를 감상해 정서 안정에도 좋고, 시도 외우니 치매 예방과 치료에 좋은 프로그램인 것이다. 또 서툴더라도 시도 직접 써보게 해서 시화전을 열어줌으로써 자긍심을 갖게 해준다.

정신장애자에게는 시를 읽도록 해서 마음을 먼저 열게끔 한 후 말벗이 되어주면서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우울증 걸린 사람에게는 우울증도 사라지게 했다.

이에 다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보다 훨씬 좋다며 도 회장을 기다릴 정도로 그의 시낭송치유는 마법과도 같았다. 그의 시낭송치유 봉사는 각 복지시설에서 그 효과를 실감하면서 시낭송치유 프로그램을 개설할 정도로 인기였다. 2014년에는 도봉구에서 미약물 치료방법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 노원실버카페에서 매주 시낭송치유 봉사를 하고 있는 도경원 회장의 모습 ⓒ천지일보 2021.8.11
코로나 사태 이전 노원실버카페에서 매주 시낭송치유 봉사를 하고 있는 도경원 회장의 모습 ⓒ천지일보 2021.8.11

그는 “시낭송치유는 내가 가진 재능이 아니라 시(詩) 자체가 갖고 있는 효과 덕분이다. 시는 마음을 열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치료효과가 있다. 시를 읽거나 감상하면 속이 시원해지고 답답한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이럴 때 말벗이 되어 얘길 들어주면 벽이 허물어지듯 가슴 속에 담아뒀던 얘기들을 하게 됨으로써 굴레를 벗어 치유 받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이는 이전에는 막 살왔는데 지금은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고도 하고, 길을 걷다가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돌이나 식물을 보면 말을 걸고 싶게 됐다는 등 예사롭지 않은 시각으로 감성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도 회장은 평일에는 최대 10곳에서 시낭송치유 봉사를 했고, 주말에는 예식장에서 전속 전문주례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주례에서도 축시 시낭송으로 포문을 열어 신랑신부에게 긴장을 풀게 하는 동시에 잊지 못할 행복한 결혼식이 되도록 선물해준다. 그는 자신이 직접 지은 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이름’과 도종환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당신’ 시로 축시 낭송을 한다. 많을 때는 하루에 6번이나 주례에 나설 정도로 주말에도 바쁜 시간을 보냈다.

2002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주례한 횟수만 1330여회나 되고, 전문사회자로 활동한 횟수도 1000여회나 된다. 평일에는 시낭송치유로, 주말에는 주례 등으로 시간을 보내 일주일에 개인시간을 보낼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그래도 그는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해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1년 넘게 도 회장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활동을 모두 중단하게 됐다.

봉사가 몸에 배어 있었던 그는 이 같은 상황에 당황스럽지만 무엇보다 치매어르신들의 치매증상이 더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그는 “시낭송치유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던 어르신들이 치매증상이 많이 나아져 가족들도 고마워했는데 1년 넘게 아무 것도 못하다보니 지금은 다시 증상이 심해지고 악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시를 안 읽게 되다보니 말도 흐려지게 되는 분도 있는데, 치매증상이 악화되는 것은 금방이지만 악화될 경우 또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코로나19 상황에 도 회장은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도경원 회장이 도봉구민청에서 마련한 시낭송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모습 ⓒ천지일보 2021.8.11
도경원 회장이 도봉구민청에서 마련한 시낭송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의 모습 ⓒ천지일보 2021.8.11

그가 시낭송치유 봉사에 열정을 쏟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 사실 그는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슬하에 2남 2녀의 자녀를 두고 자동자정비소 직장을 다니던 평범한 가장이었던 그는 특히 특별했던 막내아들을 잃고 말았다. 가장 잘 따르고 붙임성 있고 가정일도 잘 돕는 사랑스런 자녀였는데, 고등학생 2학년이었던 1995년 2월 9일 하굣길에 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과속하던 버스에 치여 숨졌다. 아침만 해도 부자가 단둘이 아침밥을 같이 먹으며 기분 좋게 하루 일과를 시작했는데, 영안실에서 마주하며 사별을 하고 만 것이다.

사고 후 그는 다니는 곳마다 막내아들과의 추억이 생각날까봐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일도 제대로 잡히지 못해 직장은 2년간 쉬어야 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는 견디기 위해 아들을 생각하며 시를 썼다. 그러면서 점점 고통스런 시간을 이겨냈고, 1998년 등단하며 만47세의 나이에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그는 자신이 시를 통해 이겨내면서 시가 가진 치유효과를 깨닫게 되면서 2003년부터 건국대, 삼육대 사회교육원 등에서 시낭송교수로 강의를 하게 됐고, 2007년부터 시낭송치유 봉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시낭송치유 봉사를 하며 10년 넘게 자신의 삶을 시낭송치유 봉사에 바쳤다. 그의 막내아들은 생전 내과의사가 돼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주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막내아들이 못이룬 꿈을 자신이 직접 시낭송치유의 놀라운 효과를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대신 병을 고쳐준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해왔던 것이다. 비록 사랑스러운 막내아들은 잃었지만 그에게는 인생이 뒤바뀌는 ‘터닝포인트’가 된 셈이다. 도 회장은 지금도 부모이기 때문에 막내아들을 가슴에 묻어두고 있지만 아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행복한 봉사를 해왔다.

그는 “시낭송 치유효과가 물질적으로는 도움이 안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도움이 되고 효과가 크기 때문에 그간 육체가 힘들어도 그만둘 수가 없었고, 관심 있는 사람이면 언제든지 찾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씨를 뿌려놓는다는 생각으로 터를 닦아 놓으면 누군가 꽃을 피우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아울러 “보건복지부에서도 자꾸 새로운 치유 프로그램을 하려고 하기 보단 길게 가져갈 프로그램으로 전국적으로 시낭송치유를 장려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언제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연명치료 거부, 뇌사시 장기 및 인체조직 기증, 사후 시신기증을 등록했다. 이같이 봉사에 있어 결연한 각오를 하고 있는 도 회장에게 코로나19 상황이 속히 종식돼 다시 빛을 발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매주 평일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치매어르신과 정신장애자들에게 시낭송치유 봉사를, 주말에는 전문주례인으로 활동한 도경원 한국시낭송치유협회장이 코로나19 이후 모든 활동이 중단된 것에 안타까워하며 빨리 재개되길 바라는 마음을 밝혔다. ⓒ천지일보 2021.8.11
매주 평일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치매어르신과 정신장애자들에게 시낭송치유 봉사를, 주말에는 전문주례인으로 활동한 도경원 한국시낭송치유협회장이 코로나19 이후 모든 활동이 중단된 것에 안타까워하며 빨리 재개되길 바라는 마음을 밝혔다. ⓒ천지일보 2021.8.11


-도경원 한국시낭송치유협회 회장 이력-

한국문인협회 문학치유 위원장
세계문인협회 낭송위원장
건대, 삼육대 사회교육원 시낭송교수 역임
시낭송문학인 대한민국 제1호
전문사회 경력 1000여회
전문주례 1330여회
 

[詩]
아들을 보내면서 - 도경원


너의 몸이
재가 되어 흩어진 그곳에
눈이 녹고 얼음이 풀려
앙상한 가지마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걸 보고
너의 넋인가 하였니라.

긴 날
풀벌레 울고 햇살 따가운 계절의
그 푸르름은
마치 네가 꾸었을 꿈인 듯싶더라.

잡는 이 없어 가는 세월에
찾아드는 외로움
울다 지쳐 붉게 멍든 숲에서
너는 흐느끼고 있었더냐?
네 눈물인 듯 방울지는 가을비를 맞으며
나도 울었니라

살을 에는 추위 속에
긴 밤이 무서워
너는 바람 소리로 우는구나!
나를 부르는 너의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데
너는 거기에서 울고
나는 여기에서 마음으로만 찾는구나!

내 몸을 태워 덥혀 라도 주었으면
따뜻한 봄이 올 때까지 만이라도...

(도경원 시인이 1995년 2월 29일 고2학생이었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으면서 그 아픔을 생각하며 아들의 영전에 바치며 지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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