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전미경 ㈔대전산내사건 희생자유족회장이 3일 유해발굴작업 현장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전미경 ㈔대전산내사건 희생자유족회장이 3일 유해발굴작업 현장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8.4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사건 현장
한 줌 흙과 뼈로 남은 희생자들
정부추산 1800여명 죽임 당한 곳
전미경 유족회장 ‘기구한 삶’ 토로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폭염이 이어진 3일 오후 1시경 기자가 도착한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골령골) 한쪽에는 포크레인이 흙더미를 파고 옮기느라 분주해 보였다. 바로 옆 커다란 구덩이에서는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팀이 유골을 찾아 정리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산내사건 현장 곤룡골에서 3일 오후 1시경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산내사건 현장 곤룡골(골령골)에서 3일 오후 1시경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 2021.8.4

이곳은 200여 미터에 달하는 ‘세상에서 제일 긴 무덤’이라고 불리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이 집단 학살된 곳이다. 덮여있던 대형 천막비닐을 들추니 수북이 쌓인 희생자들의 유골이 드러났다. 점심 식사를 마친 발굴팀이 다시 작업을 시작한 가운데 기자는 카메라에 현장 모습을 담으면서도 한편 조심스러웠다. “이게 실화인가” 싶을 정도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 이곳은 충격의 도가니였다.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산내사건 현장 곤룡골에서 3일 오후 1시경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산내사건 현장 곤룡골(골령골)에서 3일 오후 1시경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 2021.8.4

71년의 고통스러운 싸움 끝에 찾아낸 유해. 오랜 기다림으로 지치다 못해 한숨과 오열로 얼룩졌을 유족들의 고통이 느껴져 기자는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아직도 세간에 희생자들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다 씻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용히 옆으로 다가온 전미경 ㈔대전산내사건 희생자유족회장의 기구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골령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제발 빨갱이란 말 좀 그만해달라”

“큰 오빠는 병으로 잃고, 천자문을 잘 외우던 작은 오빠는 4살 때 우익단체에 의해 살해되고 저 하나 남았어요. 아버지는 8.15해방 후 격동기에 6.25 전에 산으로 도피하셨다가 잡혀가셨대요. 당시 12월 10일 눈이 많이 와서 허리까지 쌓인 길을 10리나 끌려가셨는데 산모였던 어머니가 쫓아가셔서 아버지가 고문 당하실까봐 나무 의자에 묶인 아버지 앞을 가로막고 경찰과 몸싸움을 하셨대요. 제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경찰이 한밤중에 갑자기 나타나서 ‘아버지 내놓으라’며 이마에 총을 겨누기도 해서 그 충격에 어머니는 저를 낳고 모유도 안나오시고 저는 선천적인 심장병에 걸려서 호적을 못 올렸대요. 아버지는 6.25때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계시다가 엉겁결에 5살이 되어버렸답니다.”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골령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전미경 회장에 따르면 당시 동네 이장이 할아버지 대신 호적신고를 하러 가다가 그만 이름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숙자’라는 흔한 이름으로 호적에 오르게 됐고 그때부터 ‘미경’이란 이름을 잃어버리고 살다가 아버지가 무죄 판결이 난 후 다시 쓰게 됐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자신의 이름이 두개일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사연을 기자에게 전해주는 그 목소리에는 슬픔과 억울함이 한(恨)이 되어 묻어나왔다.  

6.25 전쟁 등 혼란스럽던 때 본의 아니게 이북으로 피신하게 된 삼촌의 이름을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호주로 올리게 됐다. “그 때문인지 평생 경찰이 쫓아다니고 모든 우편물은 연애편지 한장까지도 검열을 거쳐서 받아왔다”는 이야기 끝에 전 회장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한 가지만 부탁할게요. 제발 ‘빨갱이’란 말 좀 그만해달라고 전해주세요!”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골령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산내평화공원에 안치해 위로”

행정안전부, 대전시와 동구청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지 내 유해를 발굴, 안치해 희생자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산내평화공원’ 조성사업을 하고 있다.

동구 낭월동 12-2번지 일원에 역사공원과 도로, 전시관 등을 건립하고 총 사업비는 419억원이며 행안부에서 동구에 위탁한 사업이다. 현재 유해발굴과 설계용역 중으로 유해발굴이 완료되는 내년 7월에 착공해 2024년 12월에 준공될 예정이다.

황인호 대전 동구청장은 “지난 2020년에 이은 2차 유해발굴 조사는 오는 11월까지 약 6개월간 대전 ‘곤룡골’,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에서 진행된다”고 밝혔다.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골령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점심시간 천막으로 덮어놓은 모습. ⓒ천지일보 2021.8.4

동구는 기한 내에 최대한 많은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총 3개의 발굴팀을 구성, 지표·시굴 조사를 통해 집중 발굴 범위 선정 후 유해 발굴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발굴된 유해는 봉안식 후 ‘세종 추모의 집’에 안치될 예정이다.

황인호 동구청장은 “희생자 유가족들이 기다려 온 유해발굴을 작년에 이어 다시 착수하게 되어 기쁘다”며 “산내평화공원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고 대국민 화해와 상생의 장으로 조성될 수 있도록 모든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골령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에 전시되어있는 사진과 설명이다. ⓒ천지일보 2021.8.4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 불리는 대전 산내 곤룡골(골령골)에서는 지난 2007년 국가 차원에서 유해발굴이 진행되어 2개 지점에서 34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진실화해위원회 해산 이후인 2015년 2월 민간차원에서 유해발굴을 시도해 20여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이후 2020년 9월~11월, 국가차원의 유해발굴이 재개되어 234구의 유해를 발굴했으며, 2021년에도 유해발굴이 진행 중이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추모와 평화, 인권교육을 위해 산내 골령골에서 ‘진실과 화해의 숲’이 조성될 예정이다. ’진실과 화해의 숲’은 오는 2022년 6월 착공해 2024년 12월 준공 예정이다. 

지난 2019년 11월 15일 대전 동구는 산내 곤룡골 희생자 유해 20구를 세종시 추모의집에 안치했다. 유해 이전은 유족 및 관계 공무원 등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에서 천도제와 제례 행사를 봉행한 뒤 세종시로 이동해 유해를 안치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07년 34구의 유해를 발굴해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했고, 유해 20구는 지난 2015년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에서 발굴한 것으로 4년 만에 안치하게 됐다.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골령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에 전시되어있는 사진과 설명이다. ⓒ천지일보 2021.8.4

산내 곤룡골(골령골)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전 형무소에 수감됐던 재소자들과 예비 검속된 보도연맹원 1800여명(정부 추산)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집단 희생된 장소로 알려졌다. 산내학살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1950년 7월 초 대전형무소에 수감돼있던 제주 4.3 및 여순사건 관련자 등 정치범과 대전 충남지역 인근 민간인들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끌려와 집단처형되어 묻힌 비극의 현장이다. 

동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원래 이곳의 정확한 지명은 ‘곤룡골’이다. 

그런데 왜 곳곳에 골령골이라고 기록되어 있는가. 당시 대규모 학살이 벌어진 이후부터 ‘골령골’이라고 불린다고 알려졌다. 희생자들의 뼈(유골)이 가득한 산골짜기란 의미가 아니겠는가. 현재까지 ‘죽은 사람의 뼈가 산처럼 쌓였다’고 하여 ’뼈 골짜기’라는 뜻의 ’골령(骨嶺)골’로 불려져 현재까지 구전(口傳)되어 오고 있다. 

1999년 12월 말, 해제된 미국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으며 이 문서에는 50년 7월 초, 대전형무소에 수감돼있던 정치범 1800여명이 3일동안 집단총살된 것으로 기록돼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대전형무소 산내학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는 조사과정에서 정치범 외에 민간인이 10일 가까이 끌려와 총살됐으며, 희생자 수가 최소 3000여명에서 최대 7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입구 표지판에 기록된 관련 증언에 따르면 약 1㎞에 걸쳐 총 8곳의 암매장지(학살지 및 학살추정지)가 있어 곤룡골 전체가 죽음의 골짜기라고 한다. 

대전 동구는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자 낭월동 일원에 2023년까지 국비 295억원을 들여 추모하고 교육관이 포함된 11만㎡ 규모의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골령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에 전시되어있는 사진과 설명이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골령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골령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 입구이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 곤룡골(골령골) 주변 모습. 3일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전산내사건 현장이다. ⓒ천지일보 2021.8.4
허태정 대전시장과 황인호 동구청장이 지난 4월 22일 오전 산내 곤룡골 희생자 유해발굴 현장을 방문해 전미경 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제공: 대전시) ⓒ천지일보 2021.8.4
허태정 대전시장과 황인호 동구청장이 지난 4월 22일 오전 산내 곤룡골(골령골) 희생자 유해발굴 현장을 방문해 전미경 ㈔대전산내사건 희생자유족회장, 희생자 유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제공: 대전시) ⓒ천지일보 202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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