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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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기본용어 중에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打)’라는 말이 있다. 장기에서도 통하는 용어인데 먼저 내 말이 확실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 상대방 말을 잡을 궁리를 해야 한다는 뜻의 격언이다. 자기 말의 생사를 돌보지 않은 채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역습을 당한다거나, 적진으로 깊숙이 침투했다가 퇴로를 차단당해서 대마를 죽이는 등의 우(愚)를 범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말인 것이다.

최근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모가디슈’라는 영화를 봤다.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일어난 내전으로 통신마저 끊기게 되고 한국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은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오직 목표는 생존이었다. 그 와중에 북한의 방해공작으로 더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된다. 북한의 림용수 대사 일행도 믿었던 현지인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반군시위대에게 강도까지 당하는 등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그 당시 남한과 북한은 지금보다 더욱 더 극한 대립상태에 있었다. 북한 림용수 대사는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죽음과 같은 비중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도 자신이지만 대사관 직원들과 가족들을 위해서 한국대사관의 문을 두드린다.

남한의 대사관에서조차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받아들여서 보호하는 것 자체가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적인 정으로 함께 살기를 결정해서 무사하게 탈출하게 된다. 더구나 북한대사관 직원들은 가족 한 명씩을 북한에 두고 나온 상태였다. 그들이 남한을 선택하는 경우 북한의 가족들은 곤란한 상황에 놓일 뿐 아니라 생명조차도 위협받는 상황인 것이다.

결론은 서로를 존중해주고 서로 아는 척은 물론 쳐다보지도 않기로 약속하고 무사하게 탈출하게 된다. 사상이나 정치적인 입장을 넘어서 생존을 우선하는 인간의 심리를 잘 표현했고 그 부분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했다.

가끔 인터넷에서 유명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는 내용의 뉴스를 접하게 된다. 이 세상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얼마나 힘들면 그런 선택을 할까하는 생각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살아서 억울한 일이 있다면 오해를 풀도록 최선을 다하며 견디어 볼 일이다.

어쩌면 인생은 그런 힘든 일들을 해결하고 견디어 내는 일일 수 있다. 필자는 바둑이나 장기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생연후살타’라는 격언을 가끔 새겨 본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가 먼저 살아야 그 다음, 더 좋은 방법을 찾아서 해결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서 더 나은 인생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너무 힘들 때는 좀 쉬면서 다지거나, 그럴 겨를도 없다면 좀 견디는 것, 그것도 아주 좋은 인생의 일부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훌륭한 인생일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의 고비마다 나타나는 시험을 다 치러내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위로해주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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