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와당연구가

고구려 대왕들은 무덤을 만들고 외면에 축조한 전돌에 한나라 황제들이 즐겨 쓰는 길상어를 새겼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천추만세영고(千秋萬歲永固)’다. ‘만세’는 황제의 위치가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글이다. 천년동안 나라의 안녕이 영원히 변하지 않음을 기원한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이형전(異形塼)은 원형으로 건축물의 외장에 쓰인 것 같다. 굵은 열십자 음각선으로 네 개의 구곽을 만들고 가로글로 ‘천추만세 영고’라는 글자를 새겼다. 맨 아래에는 큰 글씨로 ‘사어(四魚)’라는 글씨를 팠다. 글씨는 각이 진 예서체이며 ‘永’자는 금문(金文)에 가깝다.

고구려 어문 장식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1.8.3
고구려 어문 장식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1.8.3

구각 안에는 긴 형태의 4마리 어문이 음각으로 정연하게 새겨졌다. 천추만세와 영고와 사해 (四海)네 마리의 고기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사해는 비유적 표현으로 ①사방(四方)의 바다 ②‘사해의 안’이란 뜻에서 온 세상(世上)을 일컬음 ③수미산(須彌山)을 둘러싼 사방(四方)의 바다, 사대해(四大海)를 가리킨다. 대고구려가 천하의 주인임을 나타낸 말이 아닐까.

뒷면에는 가운데 어문으로 태극문양을 만들고 ‘太王魚陵’이라는 예서글씨를 음각했다. 남북조시기 고구려에서 유행했던 글씨형태로 광개토대왕 비문을 연상시킨다.

위서(魏書)와 북사(北史)에 기록된 주몽과 고기(魚)에 대한 설화는 이들이 왜 이를 신성시 했는가를 알려준다.

-(전략)… 주몽은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삼인(三人)과 같이 남쪽으로 행하여 개사수(蓋斯水)에 이르렀으나 건널 배가 없었다. 추격하는 병사들이 문득 닥칠까 두려워서 이에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개연히 탄식하되 ‘나는 천제의 손이요 하백의 외손으로서 지금 난을 피해 여기 이르렀으니 황천후토(皇天后土)는 나를 불쌍히 여겨 급히 주교(舟橋)를 보내소서’ 하고 활로써 물을 치니 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라 다리를 이루어서 주몽이 건널 수가 있었다… (하략)-

이 명문전은 중국 지안 고구려 고분 유적에서 수습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적색이다. 크기는 경 37㎝, 두께 6㎝.

 

태왕 어릉 토기 장식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천지일보 2021.8.3
태왕 어릉 토기 장식 (제공: 이재준 와당연구가)ⓒ천지일보 20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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