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임혜지 기자] 26일 오전 전북 김제시 금산사 연화대에서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 스님의 다비식이 엄수되고 있다. 다비식은 스님의 법구를 태워 유골을 거두는 불교 전통 장례의식이다. (독자제공) ⓒ천지일보 2021.7.26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26일 오전 전북 김제시 금산사 연화대에서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 스님의 다비식이 엄수되고 있다. 다비식은 스님의 법구를 태워 유골을 거두는 불교 전통 장례의식이다. (독자제공) ⓒ천지일보 2021.7.26

김제 금산사서 종단장으로 엄수
“국·내외 막론 자비행 실천해”
불자들 추모하며 극락왕생 발원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이제 한국 불교의 스승이신 태공당 월주 대종사를 보내드려야 하는데, 오늘 모악산의 산자락은 왜 이리도 적막할 뿐입니까… 대종사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생사(生死)와 별리(別離)의 경계는 마땅히 넘어서야 하겠지만, 스승을 보내드려야 하는 이 비통한 마음은 가눌 길이 없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대, 28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종단의 큰 어른 송월주스님 영결식이 26일 오전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종단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에 따라 유튜브와 TV로 생중계됐으며, 현장에는 불교계 인사를 중심으로 내·외빈 150여명만 참석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영결사에서 “송월주스님은 항상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이라 강조하셨다”며 “1980년에는 경기도 광주로 달려가셨고 최근에는 아프리카 지역까지 다녀오셨다. 스님은 곧 보현보살의 화현(化現)이었음을 이제야 깊이 깨닫고 있다”고 추모했다.

이어 “대종사께서 남기신 자취가 너무도 크고 무겁게 다가오는 오늘”이라며 “남겨진 저희들은 그리고 이 사회의 아픔과 이 시대의 고통은 이제 누구에게 의지 해야겠는가. 스승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이어갈 테니 부디 속환사바(速還娑婆)하시어 중생들의 곁으로 와 달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조계종 종정 진제법원 대종사는 법어에서 “송월주스님은 종단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총무원장 소임을 맡아 종단의 기틀을 마련했다”며 “불교의 역할이 그늘지고 고통 받는 중생과 함께하는 것이기에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자비행을 실천하신 종장이었다”고 설법했다.

원로의장 수봉 세민 대종사는 추도사에서 월주 대종사의 원력을 기렸다.

중앙종회의장 정문스님과 교구본사주지협의회 회장 경우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스님,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 등은 조사를 통해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에 진력하며 수행과 교화가 둘이 아님을 몸소 보여주셨다는 내용으로 송월주스님의 발자취를 되짚었다.

코로나19로 참석하지 못한 불자들은 유튜브 생중계 채팅창에 극락왕생을 발원한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했다.

다비식은 이날 금산사 연화대에서 엄수됐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26일 오전 전북 김제시 금산사 연화대에서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 스님의 다비식이 엄수되고 있다. 다비식은 스님의 법구를 태워 유골을 거두는 불교 전통 장례의식이다. (독자제공) ⓒ천지일보 2021.7.26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26일 오전 전북 김제시 금산사 연화대에서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 스님의 다비식이 엄수되고 있다. 다비식은 스님의 법구를 태워 유골을 거두는 불교 전통 장례의식이다. (독자제공) ⓒ천지일보 2021.7.26

앞서 송월주스님은 지난 22일 오전 9시 45분 세수 87세, 법랍 67세로 김제 금산사 만월당에서 원적에 들었다.

스님은 최근 폐렴 등으로 병원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상태가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님의 마지막 순간은 스님의 제자인 원행스님을 비롯해 도영스님, 동국대 이사장인 성우스님 등이 함께했다고 전해졌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 역임하며 종단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을 받는 송월주스님은 193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51년 법주사에서 금오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1961년 금산사 주지에 임명되면서 만 26세로 최연소 본사 주지가 됐다.

20년 후인 1980년에는 조계종 17대 총무원장을 지냈다. 그러다 스님은 1994년 최초 도입한 대중선거로 다시 한 번 28대 총무원장에 선출됐다.

총무원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수년간 미국, 유럽, 중미, 동남아 등을 돌면서 안목을 넓혔는데 이후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불교계 책무로 세우고 김수환(1922~2009) 추기경, 강원룡(1917~2006) 목사와 함께 종교지도자 삼총사로 불리며 시민사회 운동과 종교계 화합에도 힘썼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사회적 쓴 소리도 마다치 않았다.

스님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1989년), 불교인귄위원회 공동대표(1990∼1995), 지역감정해소국민운동본부,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등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 민주화에 기여한 여러 단체에서 공동대표나 이사장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정부 지원이 없던 1992년 10월 나눔의 집을 설립해 30여년 동안 무보수로 일하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는 데 힘썼다. 특히 2006년까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를 받아 북한을 10여 차례 직접 방문해 민간 차원의 남북관계 개선에도 관심을 쏟았다.

스님의 이 같은 나눔과 화합 운동은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모란장 수훈, 만해대상, 대원상, 조계종 포교대상 등으로 결실을 맺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6일 전북 김제 금산사에 마련된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스님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있다. (제공: 윤석열 캠프) ⓒ천지일보 2021.7.26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6일 전북 김제 금산사에 마련된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스님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있다. (제공: 윤석열 캠프) ⓒ천지일보 202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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