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not caption

지난 14일 윤석열 대선 후보가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의 사드 배치 철회 요구의 부당성과 공고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 대해 16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모 일간지에 반박 기고를 통해 ‘한미동맹이 중국의 이익을 해쳐선 안 된다. 중한관계는 결코 한미 관계의 부속품이 아니다’라고 주장해 중국의 대선 개입 논란이 빚어졌다. 세 가지 측면에서 이번 사태를 살펴본다.

첫째 한국 외교부가 보여 준 실망스러운 대응이다. 외교부는 17일 당국자를 통해 국내 언론에 “주재국 정치인의 발언에 대한 외국 공관의 공개적 입장 표명은 양국관계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코멘트하고, 바로 중국 대사관 측에 그러한 입장을 알렸으며 싱하이밍 대사가 20일 신임 차관보를 예방한 기회에 입장을 재차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 싱하이밍 대사의 기고가 그 정도로 소극적으로 대처할 사안인가? 1961년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41조는 ‘외교관은 접수국의 내정에 개입하지 말아야 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현재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선 후보가 한 말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접수국의 국내정치에 개입하는 행동이다. 외교사절이 주재국 국내정치에 개입한 것은 심각한 국제법 위반 행위이므로 외교부는 그를 ‘비호감 인물(persona non grata)’로 선언하거나 적어도 공개적으로 외교부로 불러 엄중히 경고했어야 했다. 외교부가 할 일을 못하니 외교사절들이 한국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둘째 싱하이밍 대사의 기고와 관련한 집권 여당 대표의 반응이다. 국민의힘 박진 의원은 “외교부는 싱하이밍 대사의 입장이 중국 공식 입장인지 확인하고 항의해야 한다”라고 한 데 반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우리 정부도 사드에 대한 중국의 지적에 대해 일관되게 ‘북핵 대비용’이라는 입장”이라며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중국의 레이더 이야기로 반박하면 사드가 중국을 겨냥했다는 것을 스스로 자백하는 셈이다. 상당히 위험하다”라고 논평했다. 송 대표의 말에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논란의 초점은 윤석열 후보의 발언 내용이 아니라 중국대사의 행동인데 송 대표는 중국대사의 행동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윤 후보의 발언만을 문제 삼았다. 중국대사의 행동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주저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모 일간지는 무슨 생각으로 중국대사의 반박 기고를 실어 주었는가? 외교사절이 주재국 매체에 기고하는 경우는 양국 간 수교기념일, 자국의 국경일 등 계기에 공공외교 차원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외교사절이 주재국 대통령 선거 후보의 말에 대해 공개적으로 기고하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모 일간지는 중국대사가 그러한 기고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거절했어야 했다. 모 일간지는 중국 정부의 기관지인가? 중국대사의 기고 뒤에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라고 부기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모 일간지가 대선 후보들의 외교정책에 대한 의견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에 있어 중국대사를 의견을 낼 수 있는 ‘외부 필진’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매체는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중국대사의 주장에 대한 국내 모 인사의 재반론 기고를 실었는데 초점을 벗어난 논쟁이 이어지는 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비추어 바람직한가?

그런데 중국 정부는 이번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대사의 한국 대선 개입 논란에 대한 질문에 “중국 외교관의 역할은 중국의 중대한 이익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신속하게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서 “외교관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답하고 “(싱 대사의 기고는) 소위 말하는 타국 내정 간섭, 타국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연관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기고 내용이 대사의 사적인 의견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입장이며, 앞으로도 중국의 입맛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하는 한국 정치인에 대해 ‘할 말’을 하겠다는 말이다. 국제관계와 국제법에 대한 중국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한국은 중국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 나약한 태도를 보이면 우리를 더욱 만만하게 볼 것이다. 한국은 이제 종합국력 10위권 국가이다. 정부, 언론 및 정치인들이 이러한 문제가 국격은 물론이고 우리 국민의 사기와도 연결되는 것이라는 점에 유의하길 바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