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지대본야

조승래

신문을 보다가 주먹 불끈 쥐고
뉴스를 보다가 채널 돌리고
저런 사람이 저 자리에 
저렇게 해도 그 자리에
그렇게 해도 괜찮단 말인가 하다가 
문득 거긴 이제 내 영역이 아니어라

땅에 붙은 채송화 목 한 번 들어주고
버거운 오이의 실손 뻗을 줄 이어주고
숨 막히는 텃밭 솎아주기 해 주고
무거운 호박잎 따서 강된장에
쌈 싸먹는 데에 재미 붙이며
풍년 되라고 저기서부터 오줌발 갈겨요

 

[시평]

옛날에는 으레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고 하면 농사짓는 것을 말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이 분명하던 시절에도 농사는 천하를 살리고 운영하는 가장 큰 근본이었다. 농사가 없으면 만백성이 무엇으로 먹고산단 말인가. 그래서 천하지대본은 농사였다. 또한 옛날에는 흔히 생산을 하는 양민들 중에 농사짓는 사람을 으뜸으로 꼽았다. 농사를 짓는 사람을 ‘농사꾼’이라고 불렀고, 공업이나 무엇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을 ‘쟁이’라고 불렀고, 물건을 파는 사람을 ‘장사치’라고 불렀다. ‘꾼’이니, ‘쟁이’니, ‘치’니 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농사는 생산업 중에서 가장 정직하고, 그러므로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 그런가. 자본주의시회가 되면서 예전에 그저 ‘치’로 불리던 사람이 ‘회장님’으로 그 유세가 대단한 것이 어디 요즈막의 일뿐이던가. 그런가 하면 천하지대본은 팔 걷어붙이고 힘들여 땅이나 파고 씨나 뿌리는 농사짓는 일이 아니라, 거창하게 나라의 중요 정책을 세우고 또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된지 이미 오래이다.

땅에 붙은 채송화 목 한 번 들어주고, 버거운 오이의 실손 뻗을 줄 이어주고, 숨 막히는 텃밭 솎아주기 하며. 실은 이것이 진정 크고도 큰일인데. 요즘 대선(大選)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과 이에 목을 매는 사람들을 보면 알만하다. 너나없이 모든 사람의 관심이 온통 쏠리고 있는, 대선이 바로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 되고 있지 않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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