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판자촌 구룡마을. 1980년대까지만 해도 1800여세대가 모였던 거대한 주거지였던 이곳은 이제 450세대 밖에 남지 않은 작은 마을로 변했다. 부동산 투기꾼들에게는 그저 노른자위 땅으로만 인식되지만 엄연히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하나의 마을이다. 본지는 빈곤한 경제적 여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일궈온 이곳 주민들과, 개발 추진이 미뤄지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구룡마을의 이야기를 살펴봤다.

[천지일보=이우혁 인턴기자] 6일 오후 강남의 도곡동 타워 팰리스와 구룡마을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천지일보 2021.1.6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강남의 도곡동 타워 팰리스와 구룡마을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천지일보DB 

투기꾼들이 빈집 들어와 살기도

“분양권 등 얻도록 보상해달라”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투기꾼들이 자기 부모님을 여기 데려다가 살도록 해 여긴 노인천국입니다.”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 사는 이지순(가명, 61)씨가 지난 12일 이웃사촌 3~4명과 더위를 피해 평상에서 얘기를 나누며 이같이 말했다.

강남 아파트 불패의 신화를 쫓아 대한민국의 돈이 쏠리는 땅, 8차선 도로만 건너면 바로 구룡마을이 있다. 강남 개발이 시작된 3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개발바람이 불었던 구룡마을은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땅이라고 불린다.

구룡마을의 집 가운데 5채 중 1채는 빈집이고 대부분 폐쇄조치됐다. 주민들이 구청에서 마련한 공공임대주택에 이주하면서부터 공가(빈집)가 늘어나 이를 폐쇄한 것이다. 재개발설이 계속 나오는 데다 빈집에 누가 거주하면 안 되기에 이런 조치가 이뤄졌다.

이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투기꾼들이 이 마을에 출입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고 했다. 공무원들이나 정보에 빠른 사람들이 재개발될 것을 알고 땅을 보러오거나, 빈집에 낯선 어르신이 들어가 살기도 했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와 함께 얘기를 나누던 황장영(가명, 남)씨는 “내가 마을에 들어왔을 때가 1989년도였는데 그땐 여기가 그린벨트지역이었다”며 “땅주인은 철거민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살면 좋아했다. 누군가 살게 되면 땅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 중 10여년 된 사람들은 대부분 투기꾼들일 가능성이 크다. 재개발을 노리고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12일 서울 강남구 도포1동 구룡마을 일대에 한 빈집이 폐쇄돼 있다. ⓒ천지일보 2021.7.13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12일 서울 강남구 도포1동 구룡마을 일대에 한 빈집이 폐쇄돼 있다. ⓒ천지일보 2021.7.13

구룡마을 재개발은 지난 2016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확정한 개발계획 수립안을 중심으로 시행사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서 추진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지난해에 임대 1107가구를 포함한 약 4000가구 규모의 공공임대주택 단지가 들어섰어야 했다.

하지만 주민협의체들의 반대로 개발 추진은 표류했고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합의를 위한 회의마저 더디게 진행되는 상황이다. 협의체들은 시에서 제공하는 임대아파트 입주가 아니라 입주 후 분양전환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토지주도 보상가액이 주변 시세에 미치지 못할 것을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개발이 미뤄지며 주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막연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20년 전에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는 김기철(가명, 69세)씨는 구룡산을 올라가는 입구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서울시가 구룡마을 재개발에 하루빨리 나서기를 바랐다.

현재 구룡마을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하면 재개발이 완공될 시 이곳으로 살게 해준다’는 구청의 말을 믿지 못해 남아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었다. 구청이 주민들과의 입장의 폭을 줄여나가 합의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김씨는 “예전에 오세훈 시장이 재개발한다고 발표해놓고 갑자기 시장 직을 내려놓은 바람에 못했고 박원순 시장 때도 2~3번이나 여기에 왔다가고 재개발한다고 했었다”면서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또 시장이 바뀌었다. 오 시장은 예전에 책임지고 재개발해준다고 약속했으니 (재개발을) 당연히 해줘야 된다”고 했다.

그는 구청에서 재개발한 이후 임대아파트를 주는 건 안 된다는 게 주민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30년 넘게 이 마을을 거주지로 삼아 힘겹게 살아온 주민들에겐 임대 후 분양권을 주거나 이주 보상비라도 줘서 재산권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예전에는 거주자에게 딱지(분양권)라도 줬을 땐 형편이 어려워 실제 입주하지 못하면 팔기라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법이 바뀌어 딱지를 주지 않는다”며 “서민 입장에선 딱지라도 있어야 팔고 장사밑천이나 얘들 교육도 시키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서울시는 임대 후 분양 등 거주민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법적으로 타당하지 않고 현행법상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개발 방식을 둘러싼 지자체와 주민들 간의 갈등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서울 강남구 도포1동 구룡마을 입구에 설치된 주민자치회. ⓒ천지일보 2021.7.13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서울 강남구 도포1동 구룡마을 입구에 설치된 주민자치회. ⓒ천지일보 202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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