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판자촌 구룡마을. 1980년대까지만 해도 1800여세대가 모였던 거대한 주거지였던 이곳은 이제 450세대 밖에 남지 않은 작은 마을로 변했다. 부동산 투기꾼들에게는 그저 노른자위 땅으로만 인식되지만 엄연히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하나의 마을이다. 본지는 빈곤한 경제적 여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일궈온 이곳 주민들과, 개발 추진이 미뤄지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구룡마을의 이야기를 살펴봤다.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서울 강남구 도포1동 구룡마을 일대의 전경. ⓒ천지일보 2021.7.13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서울 강남구 도포1동 구룡마을 일대의 전경. ⓒ천지일보 2021.7.13

사업 망하고 빚져 이곳으로 들어와 삶

살기 불편하지만 여유롭고 사람냄새나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서울 어디에도 이렇게 냄새나는 곳 없지만, 행복지수는 만땅이에요.”

습도가 높은데다 폭염까지 더해 체감온도는 35도에 달한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 이지순(가명, 61)씨가 이웃사촌 3~4명과 더위를 피해 평상에서 얘기를 나누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570번지 일대, 지도에는 푸른 숲으로 표시되는 마을이 있다. 서울 시청광장 22배 넓이에 1800여세대가 모여 살았지만 현재는 450세대 밖에 남지 않은 구룡마을. 여긴 주민센터도 없고 파출소도 없고 병·의원도 없다. 서울이지만 서울이 아니고 강남이지만 강남이 아닌 곳, 구룡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강남요지에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서 구룡마을까지 거리는 1㎞ 남짓 그러나 그사이에 간격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멀어 보인다. 구룡산 자락엔 수십 년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마을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무렵 올림픽 철거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다. 1980년대 말에는 수도권 5대 신도시 철거민들이 흘러들면서 300여세대가 비닐하우스 촌을 이뤘고 이후에도 낮은 곳을 찾아 끊임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구룡마을 곳곳엔 주민들이 오가며 얘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여러 곳 있었다. 3~4명씩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고 오가는 사람들이 인사를 나누며 여유를 갖고 평화로운 모습을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32년 전 이곳으로 오게 됐다는 이씨는 “요즘 이렇게 이웃과 얘기 나누고 사는 사람들이 없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높다”며 “한편으론 지금이라도 화장실이나 시설 좋은 데로 이사를 가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빠듯해 이사를 갈 입장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구룡마을에는 8개 정도의 지구가 있다. 각 지구마다 세 사람이 동시에 지나가기 힘들 정도의 폭으로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진 곳이 많아 깊숙이 들어가면 나오기가 어려울 정도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은 나무판자로 돼 있었고, 공사장에서 덮어두는 헝겊과 장판이 붙어 벽과 지붕을 대신했다.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서울 강남구 도포1동 구룡마을 일대 골목 전경. ⓒ천지일보 2021.7.13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서울 강남구 도포1동 구룡마을 일대 골목 전경. ⓒ천지일보 2021.7.13

남편이 사업하다 망해 이곳으로 왔다는 이씨는 “우리 마을엔 굽이굽이 사연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전기와 수도도 제대로 들어온 지 10여년 밖에 되지 않아, 그간 많이 어려웠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1950~1960년대 전쟁 피난 온 사람들과 같았다. 콧구멍만한 방 1칸에 남편이랑 얘 둘을 데리고 살았다”며 “전기 누전도 많아 화재가 많이 발생했다. 불이나면 바로 대피해야 되니까 항상 옷을 입고서 자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압기가 터진 것도 몇 번이나 있었고, 전기가 떨어질 때를 대비해 양초는 기본 중에 기본으로 갖추고 있었다”며 “주위에 선풍기를 사용하면 눈을 쌍심지를 켜고 바라봤을 정도”라고 했다.

이씨는 어렵게 살아 다른 부모들처럼 얘들한테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잘 자라 준 자식들에게 고마워했다. 그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서럽게 학교를 다녔다. 그때시절엔 촌지가 있어 형편이 좋은 집에는 촌지를 선생님께 드렸고 우리는 못 드렸는데 그 차이가 엄청 컸다”며 “선생님의 차별이 심했고, 얘들조차도 쓰레기통에 산다고 놀리고 왕따를 시켰었다. 이제는 얘들이 커서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해 출가했다”고 했다.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12일 서울 강남구 도포1동 구룡마을 일대에 가스불 조심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천지일보 2021.7.13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12일 서울 강남구 도포1동 구룡마을 일대에 가스불 조심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천지일보 2021.7.13

◆마을에 드리운 코로나19 그림자

또 다른 그늘에선 주민 서너명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이에 구급차가 지나가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이말복(가명, 88)씨는 “여행가는 사람도 없는데 왠 코로나”라면서 “저번 주에도 확진자가 나온 모양이던데 이 동네에도 코로나 바람인가”라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안 걸리는 곳이 없다. 여기 주민 중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걸려서 들어 온 것 같다”며 “그래도 같은 장소에 있어도 재수 없는 사람만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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