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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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북한 체제를 사회주의로 보는 평가는 오류라는 것이 대부분 학자,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건 사회주의도 봉건주의도 아닌 어중간한 세습체제다. 북한 사회주의는 이미 김정일 세습체제가 등장한 1970년대 중반 실종됐다. 고난의 행군이 끝나가던 2000년대에만 북한이 중국식 시장사회주의로 전환했다면 오늘의 재앙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의 사회주의는 아래로는 가족경양식 농촌개혁으로, 위로는 ‘붉은 자본가’를 장려하는 방식으로 개혁의 길을 달려와 탄탄한 시장사회주의로 정착됐다. 중국은 ‘붉은 자본가’를 양성함에 있어 영의인처럼 기존의 자본가를 복구하는 형식으로, 또 새로운 붉은 자본가 마 윈 등을 키워내는 2중적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오늘 북한에 기존 자본가란 씨가 말라버린 지 오래다. 그렇다고 새로운 신진 자본가 양성도 없었다. 다만 장마당 경제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신흥 돈주들이 영세한 ‘자본’을 축적한 것이 전부다. 우리는 ‘붉은 자본가’ 양성 없는 북한의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는 곧 고사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런데 최근 북한 당국의 사고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이건 ‘붉은 자본가’는커녕 영세한 돈주들마저 말라죽이려는 것은 아닌지 의아심이 든다. 김정은 체제는 인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는 외면한 채 입만 열면 ‘사상교양’을 들먹인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7월 10일 ‘혁명적 수양과 당성 단련을 더욱 강화하자’ 논설에서 “일군(간부) 대열에서 세대교체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며 “지난 세기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전후해 성장한 세대가 지금 일군 대열의 주력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문은 이들 세대를 두고 “착취와 압박도, 망국노의 설움도 체험하지 못했고 가열한 전화의 불 속도 헤쳐보지 못했으며 잿더미 위에서 모든 것을 새로 일떠세워야 했던 간고한 시련도 겪어보지 못했다”며 “일군 대열에서 일어난 질적 구성에서의 변화는 간부 혁명화(사상 단련) 문제를 더욱 부각해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기에 고난의 행군을 겪은 뒤 체제 수호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에 더 천착해온 ‘장마당 세대’가 속속 당 간부로 나서게 되자 자칫 사회 전반에 사상 이완이 전염될까 우려하고 나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제난 타개보다도 간부들의 사상을 재교육하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못 박았다. 그렇다면 김정은 남매는 언제 한번 배고파 본적은 있었단 말인가?

계속하여 노동신문은 “첨예하게 제기되는 경제 문제를 풀기 전에 간부혁명을 일으키는 것, 바로 여기에 실질적인 전진을 이룩할 수 있는 근본 방도가 있다”며 “간부 혁명을 현 국면에 맞게 더 강도 높이, 선차적으로 심화시켜 나가야 할 전당적 중대 과업으로 내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구세대 간부들에 대한 경고도 덧붙였다. 신문은 “강철도 밖에 내버려 두면 녹이 슬게 된다”며 “어제 날 능력 있는 일군이었다 해도 수양과 단련을 소홀히 하면 오늘에는 당정책 집행에 난관을 조성하는 걸림돌, 제동기가 되기 마련”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사회 전반적으로는 남측 문화에 익숙한 ‘MZ세대(10∼30대)’에 대한 사상 단속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4월 직접 “청년들의 옷차림과 머리 단장, 언행,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늘 교양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언급했으며,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남측 영상물 유포자를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최근에는 부부나 연인 간 호칭에서도 남측 말투 사용을 금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정말 북한 사회의 세대교체를 몰라서 이른바 간부교양을 밥 먹듯이 언급하고 있단 말인가? 과거 김정일 시대 북한 간부들에게는 일할 기반과 당의 권력이 보장되었지만 오늘 북한 간부들은 그야말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무용지물이다. 대관절 기업이 작동을 멈추고 식량배급이 사라진 사회주의에서 간부들이 누굴 데리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철부지 김정은은 아예 모르고 있다는 말이다. 평양종합병원 하나 제대로 건설하지 못해 내각총리가 날아가고 노동당 부위원장이 숙청되는 게 오늘 북한 사회주의의 맨얼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루빨리 북한식 ‘붉은 자본가’들을 양성하고 그들에게 경제를 맡겨야 한다. 거침없이 중국과 베트남에서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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