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이 새로운 땅은 불행하게도 중국의 흔적에 완전히 뒤덮여 있다… 민요와 이야기책, 아녀자들을 위한 몇몇 소설을 제외한 모든 것은 한자로 표기됐으며 중국사상의 틀에 주조돼 있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한글로 쓰인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리피스 선교사의 전기 내용 중)

19세기 조선, 선비와 지배층은 문자 혜택을 독점해 일반 민중을 우민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글은 언문이라는 이름으로 제한적으로 사용될 뿐 천시하는 풍조가 팽배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시 천주교와 개신교가 한글의 저변 확대와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예리 한국학중앙연구원 부교수는 ‘기독교와 한글’이라는 국립국어온 온라인 소식지 기고를 통해 19세기 조선 민중의 한글 사용 확대에 기독교 곧 천주교와 개신교가 기여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천주교는 조선 후기 서학의 유입과 함께 수용됐다. 1784년에는 한국천주교회가 창설됐다. 개신교는 19세기 말 만주를 오가던 의주 상인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1883년 황해도 장연군에 최초의 개신교회인 소래교회가 설립됐다.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종교는 한글을 통해 조선의 민중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1864년에는 천주교의 교리서가 다수 발행됐는데 당시 중국에서 발행된 한문 교리서를 번역한 것도 있었고 한국에서 선교하던 프랑스 신부들이 자체적으로 편찬한 것도 있었다. 한국천주교회가 채택한 최초의 공식 교리서 ‘성교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은 중국에서 간행된 동명의 한문본을 다블뤼 신부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천주교의 근본 교리를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풀이한 ‘성교요리문답’은 1864년 초판이 발행된 이후 수차례 재간행되며 공식 교리서로 널리 활용됐다.

제5대 조선 천주교 교구장을 지낸 다블뤼 신부는 그 밖에도 한글 전용의 묵상서 ‘성찰기략(省察記略)’ ‘회죄직지(悔罪直指)’ ‘신명초행(神命初行)’ 등을 펴냈다. 1890년대에는 천주교의 신약성경 해설서라 할 수 있는 ‘성경직해(聖經直解)’가 간행됐고 1910년에는 사복음서의 번역본인 ‘사사성경(四史聖經)’이 발행됐는데 초창기 천주교 신자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전했던 두 책은 모두 한글 전용으로 발행됐다.

개신교의 경우, 선교사 로스(John Ross) 등에 의해 1882년 ‘예수성교 누가복음전서’가 간행됐다. 이후 1887년 신약성서 전체를 번역한 ‘예수성교전서’가 간행됐다. 두 책 모두 한글 전용이었다. 1885년에는 일본에 거주하던 이수정(李樹廷)이 요코하마에서 ‘신약 마가전 복음서 언해(新約 마가傳 福音書 諺解)’를 국한혼용문으로 번역한 바 있는데 이는 이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마가의 전한 복음서 언해’로 다시 번역돼 한글 전용으로 재출간됐다.

예배에 활용됐던 찬송가에서도 초창기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다. ‘찬양가(1895)’는 언더우드가 편찬한 찬송가집으로 한글로 쓴 노랫말을 수록했다. 서문을 살펴보면 이 책에 실린 찬송가 대부분은 외국의 찬송가를 여러 사람이 번역한 것이지만 일부는 조선에서 창작된 것이라고 나와 있다.

부활 주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 활용됐던 예배 순서지도 전해진다. 당시 순서지를 보면 ▲찬양 ▲기도 ▲찬양 ▲성경 ▲문답 ▲찬양 ▲목사 강론 ▲기도 ▲헌금 ▲찬양 ▲사복 기도 순으로 예배를 드렸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문답’의 경우 다 같이 낭독할 수 있도록 ‘문’과 ‘답’의 내용 전체를 순서지에 실었다. 목사가 “오날은 날이뇨?”라고 물으면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순서지에 제시된 문장을 읽으며 “예수 그리스도 날이니라”라고 답을 했을 것이다. 이는 당시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은 한글에 대한 기본적인 문해력을 전제했다고 볼 수 있다.

안 교수는 “한국 기독교의 정착 과정에서는 한글로 된 종교 서적들이 핵심적인 매개체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감리교회에서 편찬한 한글교재 ‘초학언문’에서 이러한 부분이 잘 나타나고 있다. 전체 20개 공과로 이루어진 초학언문 제1공과에서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의 낱글자들을 익히도록 하고 있고, 제2~3공과에서는 자음과 모음을 합쳐서 음절을 이루는 법을 익히도록 하고 있다.

제4공과에서는 단어를 익히도록 하고 있는데 ‘가지, 고기, 그림, 곡식, 나물, , 능금’ 등 일상생활에서 널리 활용되는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다. 제5공과에서는 ‘밥 가져 오너라’ ‘물 마셔라’와 같은 짧은 문장을 학습하도록 했다. 제6공과부터는 독해 연습을 위한 짧은 글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제7~10공과에서는 교육, 위생, 인륜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고 제11~16공과에서는 조선의 풍습과 지리를 설명했으며 제17~20공과에서는 기독교의 교리를 서술했다.

그 내용 중에 특히 흥미로운 점은 조선의 풍습을 기술하며 조선 사람들의 전통적 세계관이나 풍습 중에 근대 과학이나 기독교 교리에 맞지 않는 부분들을 조목조목 지적한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해가 땅 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땅이 해 주위를 돈다고 한 부분이나, 서낭당에 가서 복을 비는 것은 귀신에게 복을 비는 것이므로 옳지 못하다고 한 부분 등이다.

안 교수는 “초기의 기독교 신자들은 초학언문과 같은 교재를 통해 한글을 깨우쳤을 뿐 아니라 근대 세계에 대한 기초적 지식과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배웠다”며 “그리고 한글로 된 성경과 찬송가를 보며 예배를 드리고 교리서를 읽으며 신앙을 키워 갔다. 보통 교육이 미비했던 19세기 말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기독교의 한글 교육과 한글 사용은 비단 종교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도 의미가 매우 컸다고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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