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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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은 몸과 마음을 다듬는 것이다. 주역에서는 ‘성성존존(成性存存)’ 또는 ‘궁리진성(窮理盡性)’이라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본성을 만들어 잘 보존하고, 이치를 궁구해 본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전자는 심성을 보존하고 기른다는 의미로 ‘존양(存養)’이라 하며, 후자는 그 이전에 무엇이 순수한 본성인지를 깊이 관찰하고 연구한다는 시각이다. 더 구체적인 존양의 방법은 자기 성찰 즉 내성(內省)이 첫째이다. 공자는 논어 헌문(憲問)에서 옛날 학자는 자기를 위해 공부를 했지만, 지금 학자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공부를 한다고 꼬집었다. 위령공(衛靈公)에서는 군자는 자신을 나무라고, 소인은 다른 사람을 원망한다고 했다. 이것이 내성이다. 그릇된 욕망을 발견하고 본성에서 광명을 찾는 길이다. 둘째는 조지(操持) 즉 심신을 잘 관리하고 경영하는 것이다. 조지는 내성을 이루고 난 다음 과정이다. 대학에서 말하는 ‘명명덕(明明德)’이다. 명명덕이 완성되면 도덕과 사업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도덕은 내면적 자각이고, 사업은 도덕의 외면적 실천이다. 그것을 ‘외왕(外王)’이라 한다. 셋째는 존성이다. 애써 형성된 본성을 잘 유지한다는 뜻이다. 존성에서는 ‘성(誠)’이 가장 중요하다. 성은 본성을 유지하려는 진실한 마음이다.

내성외왕과 존성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수없이 시행착오를 범한다. 군자는 시행착오를 통해 내성외왕에 이르고 존양을 통해 존성을 유지한다. 자신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다는 사람은 지독한 거짓말쟁이이다. 남에게 완전무결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사람은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다. 청의 이도평(李道平)은 주역집해찬소(周易集解纂疏)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주역 계사전의 ‘허물이 없다는 것은 잘못을 보완하는 것을 잘하는 것이다(無垢者, 善補過者也)’라는 대목을 해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잘못했더라도 고칠 수 있기 때문에 선보과라고 한다.”

‘선보과’는 도덕적 인격형성의 첫 번째 단계이다. 그렇다면 잘못(過)은 무엇일까? 논어 위령공에서는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잘못(過而不改, 是謂過矣)’이라고 했다. 이론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분명히 안다면 그것을 고치고 보완해 선을 행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 본성을 깨달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그렇다. 그러나 대부분은 후천적 욕망이 순수한 본성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고치기를 주저한다. 따라서 허물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보완하지 않는 것이다. 잘못을 고치고 보완하려면 대단한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주역에서는 인간행위의 결과를 경중에 따라서 길(吉), 흉(凶), 회(悔), 린(吝), 무구(無垢) 등 5가지로 분류한다. 이 가운데 길을 제외한 나머지 4가지는 모두 잘못의 결과이다. 사람은 누구나 선행보다는 잘못을 더 많이 저지른다. 길은 선행의 결과이다. 흉은 잘못이 가장 큰 상태이며, 회는 작은 잘못을 저지르고 고치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린은 작은 잘못을 저지르고 고치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무구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곧 고치고 보충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인간의 진정한 도덕성은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한 다음 그것을 개선하고 보충하는 것이다. 이상을 다시 구조화하면 다음과 같다. ‘길(吉) ← 무구(無垢) ← 회(悔) ← 과(過) → 린(吝) → 흉(凶)’

잘못을 중심으로 왼쪽 방향이 ‘선보과’이다. 도덕성 검증의 기준을 잘못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면, 비인격적, 비현실적, 비논리적이 된다. 그러므로 공격에 대응자세도 자신의 도덕성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방어보다는 내가 얼마나 선보과를 잘 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선보과는 남에게 관대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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