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지헌 기자]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시행 첫날인 26일 서울 KB국민은행 여의도본점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DSR은 대출심사과정에서 기존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 등 모든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합산, 연 소득과 비교해 대출한도를 정하는 방식이다. 이때 합산하는 대출은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대출, 자동차할부대출, 카드론 등 모든 대출을 말한다. ⓒ천지일보 2018.3.26
서울 KB국민은행 여의도본점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은행 대출길이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 국내 주요 은행들이 신규 가계대출 고삐를 더욱 조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부터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대폭 강화된 데 이어 주요 은행들도 대출 한도를 줄이고 일부 대출 판매를 중단하는 등 잇달아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시작된 초저금리 환경이 끝날 조짐이 보이면서 금융당국은 은행이 한발 앞서 대출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을 재차 주문하고 있다. 은행은 신용대출 위주로 한도 축소와 금리 조정에 나서고 있다.

이는 연내 금리 인상을 앞두고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강화된 결과다. 금리 상승 리스크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지만,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사람들이 저축은행, 보험사 등 제2금융권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게 됐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이 이처럼 대출 죄기에 나선 것은 강화된 총량 규제 때문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급증한 가계대출 증가율을 5%로 관리하라는 지침을 은행들에 내렸다. 내년 중에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인 4%대로 낮출 것도 주문했다.

지난해 초저금리 환경으로 시장에 유동성이 넘치면서 은행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현상이 이어지자, 이를 막기 위해 권고한 것이다. 올해 1∼2분기를 지나면서 금융당국의 은행 압박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올해 들어 각국 경기 회복세가 나타나는 데다 이른바 ‘제로금리’ 시대가 종결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내비쳤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한두 차례 올릴 것이라고 공식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은 더 강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대출이 가파른 증가세를 계속 이어간다면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대출자의 이자 부담이 크게 가중된다. 게다가 시장금리가 오르면 지금까지 상승 곡선을 탔던 부동산, 주식 등 자산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할 수 있다.

지난 1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시중은행장과 만나 “불요불급한 가계대출 취급을 최소화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2일에는 도규상 금융위 부위원장이 금융리스크 대응반 영상 회의에서 “버블이 끝없이 팽창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라며 “부동산 등의 투자에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경각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방침에 따라 이달부터 개인별 DSR 규제도 대폭 강화됐다. 규제지역에서 6억원이 넘는 집에 대해 주택담보대출을 받거나 이미 받은 대출을 합쳐 1억원이 넘는 신용대출을 받으면 DSR 40% 규제가 적용된다. 소득에 따라 대출 한도가 크게 줄어들 수 있고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모두 끌어쓰는 영끌도 사실상 어려워진다.

은행 대출길이 좁아지면서 어떻게든 대출을 받으려는 실수요자는 저축은행·카드론 등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제2금융권으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금융권의 개인별 DSR 한도는 60%로 은행(40%)보다 높아 추가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다시 저소득·저신용자의 연쇄 대출 제한으로 이어지는 부작용도 낳을 수 있다. 은행 대출을 받던 사람들이 2금융권으로 향하면 기존에 2금융을 이용하던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이에 따라 농협은행은 오는 6일부터 개인신용대출의 최고 한도를 기존 2억5천만원에서 2억원으로 낮춘다. 해당 대상은 ‘신나는직장인대출’과 전문직대출 등 고소득자와 전문직에 나가던 신용대출이다. 이들 대출은 그만큼 신용대출 한도가 줄어든다.

농협은행은 앞서 지난달 중순부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가운데 모기지신용보험(MCI) 대출, 모기지신용보증(MCG) 대출 상품 판매를 중단하고 우량 신용대출 우대금리를 0.2%p 축소한 바 있다.

이는 농협은행이 올해 상반기 가계대출 증가율이 작년 말 대비 5.8%에 달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에 권고한 올해 연간 증가율 5%를 상반기에 이미 넘긴 것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은 ‘연간 5%’ 기준을 맞추고자 올해 상반기 가계대출 증가율을 1∼3%대로 조절했다. 은행들은 작년 말부터 각종 대출 우대금리를 줄이고, 고액 신용대출 한도를 낮추는 등 방법으로 총량 급증을 막았다.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 통계를 보면 5월 예금은행 전체 가계대출 금리(가중평균·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2.89%로 4월보다 0.02%p 하락했지만, 신용대출 금리는 연 3.65%에서 연 3.69%로 0.04%p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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