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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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은행은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화폐 환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밝혔다. ‘화폐 환상(Money Illusion)’은 미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고안한 개념으로 물가상승으로 임금이 오른 것인데, 실질 소득을 간과하고 임금 인상 자체만을 좋아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실질 소득이 증가하지 않았는데도 돈을 많이 번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다. 집값이 올랐는데 임금 오른 것만 선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의 관련 연구를 보면 이런 화폐 환상을 가지고 있을수록 자산이 적었다. 상대적으로 가난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실질적인 가치에 대한 사고를 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임금과 물가 상승은 서로 상승시키는 악순환 관계에 있다. 그런데 반대로 디플레이션 기간에는 물가 하락에 따라서 임금이 적어져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임금을 깎게 되면 강력한 저항을 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임금을 깎지 못하고 감원을 하게 된다. 결국 디플레이션 기간에는 실업률이 늘어나게 된다. 만약 임금을 깎는다면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가공식품 제조업계에서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줄어들다’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말인데, 포장지 안의 음식물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슈링크플레이션은 2015년 영국의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제안한 용어로 우리 개념으로는 질소과자를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과자를 보존하는 데 질소를 채우면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포장지 크기에 비해 질소가 과자보다 많아지는 것을 말한다. 요컨대, 식재료 가격이 오르는 상황인데 가격을 올리지 않고, 내용물을 줄이는 현상이다. 가격인상으로 구매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한 꼼수다. 내용물 표기 의무를 강화하는 한편, 소비자들이 제품을 꼼꼼하게 따져 봐야 한다. 가격이 그대로라고 해서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니다. 물론 소비자들 가운데는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음식 혹은 맛이 있는 음식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프리미엄 제품이 부각되기도 했다.

영화 티켓이 인상 6개월 만에 다시 오른 것에 대해서 관객들의 원성이 있었다. 인상의 근거는 코로나19로 극장업계가 엄청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티켓 가격을 인상하면 더욱 극장을 찾지 않을 수도 있는데, 멀티플렉스는 가격을 1천원 정도 인상했다. 티켓 가격을 그대로 두면서 다른 서비스를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가격을 연이어 올려 버렸으니 질소과자나 슈링크플레이션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관객이 기꺼이 인상된 가격으로 극장을 찾으려면 정말 좋은 작품이 극장에서 상영돼야 한다. 일단 7월 7일 할리우드는 ‘블랙 위도우’로, 7월 28일 ‘모가디슈’, 8월 ‘싱크홀’에는 한국 영화 대작이 극장가를 찾는다. 여기에 황정민 주연의 ‘배우’, 한국형 좀비물 ‘방법: 재차의’가 합류하고 나홍진 감독의 태국 공포물 ‘랑종’도 대기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로는 ‘정글 크루즈’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 ‘더 수어 사이드 스쿼드’도 액션 오락물로 눈길을 끌고 있다.

극장가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200만 관객을 넘었기 때문에 고무적인 분위기인데, 아직 한국영화 가운데 1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없다. 지난해에는 ‘#살아있다’가 6월에 개봉해 381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적이 있었다. 분명 볼만한 영화가 있다면 티켓 가격이 인상돼도 극장을 찾는다. 아직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는 더욱더 위험부담을 감수한 심리적 준비가 필요하다.

화폐 환상이 발생하는 것은 임금이나 부동산에 의존도가 높을수록 더욱 심하다. 슈링크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구매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수록 편법적인 방법은 여전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직접적인 가격인상에도 불구하고 능히 극장에 가려한다면 정말 갈 수밖에 없는 절대 가치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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