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당선인이 21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인사를 하고 있다. 오는 8월에 취임하는 라이시 당선인은 사법수장 시절 반체제 정치범 수천명을 처형한 데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출처: 뉴시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당선인이 21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인사를 하고 있다. 오는 8월에 취임하는 라이시 당선인은 사법수장 시절 반체제 정치범 수천명을 처형한 데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출처: 뉴시스)

대통령 당선인 “바이든 안 만나”
“미사일·민병대 협상 대상 아냐”
반체제 인사 숙청 의혹도 반박
美 “바이든 상대는 최고지도자”
이란 핵합의 복귀 회담 막바지

[천지일보=이솜 기자] 이란의 대통령 당선인이 21일(현지시간) 첫 발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거나 이란의 핵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을 일축하며 강경 입장을 밝혔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60) 당선인은 이날 대선 압승 후 테헤란에서 첫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기자회견은 이란이 국제 강대국들과 핵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가운데 향후 4년 동안 어떤 태도를 취할지에 대한 예고편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만날 생각 없다”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최측근이자 강경 보수 성직자인 라이시 당선인은 이란 역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대선에서 62%의 지지를 얻었다. 라이시 당선인은 오는 8월에 취임한다.

하메네이 측이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 세력과 개혁파들의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한 후 수백만명의 이란인들은 이번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특히 수도 테헤란의 투표율은 34%로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낮았고 많은 투표소가 눈에 띄게 텅 비어 있었다.

이날 라이시 당선인은 먼저 이란 핵 협상과 관련해 이란 경제를 황폐화시킨 미국의 제재로부터 구제 금융을 확보하기 위해 합의점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란의 미사일 능력과 지역 민병대 지원에 대한 어떤 제한도 배제했다. 라이시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 “협상 불가”라며 “미국은 이란에 대한 모든 억압적인 제재를 해제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예멘의 후티 반군이나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같은 무장단체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역내 적들에 대항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라이시는 “없다”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이와 관련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상대는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라며 이란의 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사키 대변인은 “대통령의 관점은 이곳(이란)의 결정권자는 최고 지도자라는 점을 언급하겠다”며 “이는 선거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온건·개혁파 배제… “정치 쿠데타”

이날 로이터통신은 6명의 이란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번 대선의 강경파의 승리로 이란 내 권력의 균형이 반(反)서방 성직자들에게 기울었으며 국민 투표로 선출된 관리들로부터는 멀어졌다고 분석했다.

이란의 정치 체제는 시아파 이슬람 성직자와 선출된 대통령과 의회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대통령은 정부를 운영하지만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하메네이와 연계된 성직자와 법학자들로 구성된 강경 감시기구는 강력한 정치적 사회적 제한을 지지하며 어떤 후보가 출마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란 분석가인 알리 파톨라 네자드는 로이터에 “이번 선거는 경쟁자를 배제했기 때문에 선거라기보다는 (하메네이의) 선택이었다”며 “소위 공화정체제는 무력하고 신정체제가 전능하다고 보는 이슬람 공화국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직 고위 관료들을 포함한 일부 인사들은 라이시의 당선이 정치 현장에서 다른 모든 파벌들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 쿠데타’라고 비난하고 있다.

위기그룹의 이란 프로젝트 책임자인 알리 바에즈는 하메네이가 자신이 원하는 헌법 개정에 반대하지 않을 ‘적절하고, 입증된, 충실한 대통령’을 선호했다고 말했다. 바에즈는 “그들(하메네이 측)은 헌법에 구조적인 변화를 위한 기반을 닦고 있을 것”이라며 대통령제에서 의회 체제로 바꾸는 것을 포함한 모든 권력 기구들에 대한 일원론적인 통제를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하메네이는 지난 3일에도 “앞으로 선거가 무의미해질 때가 올 수도 있고 다른 형태의 대중적 존재와 표현이 있을 수도 있다”며 의회 체제로의 변화를 암시하기도 했다.

대중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강경파가 지배하는 국회에서 선출된 총리로 교체하면 최고 지도자의 기득권 장악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당선인이 21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질문을 듣고 있다. 오는 8월에 취임하는 라이시 당선인은 사법수장 시절 반체제 정치범 수천명을 처형한 데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출처: 뉴시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당선인이 21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질문을 듣고 있다. 오는 8월에 취임하는 라이시 당선인은 사법수장 시절 반체제 정치범 수천명을 처형한 데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출처: 뉴시스)

◆‘인권유린’ 라이시 당선에 美 곤란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오스트리아 빈에서 핵합의 복원 회담이 추진되고는 있으나 강경보수 성향의 라이시가 당선되면서 회담 전망도 복잡해졌다.

2015년에 성사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탈퇴하고 이란이 핵 활동을 재개하면서 깨졌다. 미국의 핵합의 탈퇴 후 이란은 우라늄을 현재 60%까지 농축하고 있다.

이란은 지난 4월 초부터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독일 측과 핵합의 복원에 대한 협상을 시작해 지난 주말 6차 회의를 마쳤다. 유럽 관리들은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없고 직접 협상하지 않는 이란과 미국 대표단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의 고위 외교관들은 전날 성명을 통해 모든 국가들이 빈으로 돌아가 협상을 마무리 지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란 성직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이 경제난에 대처하는 데 달려 있음을 알고 있기에 핵합의에 복귀 가능성이 크다. 이날 이란 외무부도 이번 협상이 상당 부분 진전됐으며 정치적 결정만 남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라이시의 당선으로 딜레마에 빠진 양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핵합의 이후 회담이 이란의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과 민병대 지원과 같은 문제들을 다룰 수 있길 원했으나 라이시는 이미 이에 대해 제한이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또 이란은 핵합의 복원 조건으로 제재 해제를 주장하고 있으나 제재를 해제하면 이후 이란을 다룰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라이시 당선인의 제재 해제가 문제다. 앞서 사법수장을 역임한 라이시는 많은 인권 유린에 연루돼 있는데 그 중에서도 1980년대 5천여명의 정치범에 대한 처형에 관여한 혐의로 트럼프 행정부 당시 제재를 받았다. 라이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나는 언제나 인권과 사회 권리를 옹호해 왔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최근 이란의 차기 대통령이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인권 문제를 중요시 여기는 바이든 행정부가 라이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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