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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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또 허풍 한 번 크게 떨고 나섰다. 뭐 “대결에도 대화에도 준비돼 있다”고. 대관절 누구와 맞서 대결을 벌이겠다는 건가? 미국하고 대결준비가 돼 있다는 말 같은데 허풍 치고는 좀 지나친 허풍 아닌가. 북한에서는 지난 주 사흘 동안의 노동당 제8기 3차 전원회의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이 이와 같은 발언을 해 실소를 자아내고 있다. 북미 대화는 평양이 결심하면 언제든 가능하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에 정면으로 대결을 신청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 지는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대결이라기보다 미국의 일방적인 한 판 승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은 식량사정을 비롯해 모든 게 고갈 직전이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첫날 전원회의에서 밝힌 내용을 국내외 언론이 비교적 비중 있게 다뤘는데 발언 내용 중 서방 언론이 가장 크게 주목한 대목은 식량난이 있음을 인정한 점이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식량난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김일성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초다. 김일성은 1972년 식량난 자체해결 포기를 밝힌 적은 있지만 식량이 없다고 우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유엔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평가한 올해 부족 식량은 86만톤 정도로 8월~10월이 ‘혹독한 시기’라고 한다.

이에 따라 식량 가격도 최근 많이 오른다고 한다.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가 조사한 쌀값 동향에 따르면 평양 기준 쌀값이 2일 ㎏당 4100원에서 8일 5000원으로 올랐고 옥수수도 3000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장사도 못하게 된 상인 계층들 중 식량을 구하려 집을 팔고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이 즐비하며 집을 팔고 난 뒤에도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굶는 사람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그 참상이 눈에 선하다. 특히 평안북도, 함경북도, 양강도 지역의 쌀값이 5월 28일 4200원에서 6월 15일 7000원으로, 옥수수는 2200원에서 5300원으로 올랐다고 하는데 이에 따라 굶어 죽는 사람도 일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식량 가격을 통제하지 않고 오히려 국가공급 식량 가격을 시장가격에 맞춰 올림으로써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고 있다고 북한 현지 소식통이 말한 것으로 아시아프레스가 전하고 있다. 물가 폭등에는 일반 생필품도 함께하고 있는데 영문 북한 전문매체 NK News는 샴푸 한 통에 200달러(우리 돈 23만원쯤), 바나나 1㎏에 45달러(5만 3000원) 등 수입 물품의 가격이 최근 한 달 남짓 사이 5배에서 10배까지 폭등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곧 무너지는 건가’라는 아우성이 인민들 속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국경을 봉쇄하고 무역을 중단한 상황에서 수입물품 가격이 폭등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의 핵심은 북한 당국이 경제정책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오직 체제통제에만 광분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지난해도 식량난이 있었고 중국이 80만톤을 지원했지만 북한은 그중 소량만 가져갔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대규모로 식량을 가져오다가 코로나가 퍼질 것을 걱정했고 대신 군대가 비축한 식량을 풀어 부족한 식량을 메웠다는 설이다. 올해는 코로나가 잦아들고 있으니 중국에서 대규모로 식량을 지원받을지도 모르겠으나 한국이나 유엔 등 국제사회가 지원하겠다고 해도 북한이 쉽게 받아들일 것 같진 않아 보여 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고 대화에도 대결에도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발표한 것은 한 줄기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제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결에도 준비돼 있다는 헛소리 그만두고 대화나 하자고 나서야 할 것 같다. 마침 미국의 성 김 대북정책 특보가 서울을 찾아왔다. 벌써 성급한 전문가들은 그가 이번에 판문점에서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1부상과 만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물론 북한이 진정 대화에 준비돼 있다면 요즘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최선희 부상을 판문점으로 내보낼 수도 있겠지만, 최선희가 열 번을 나온들 북미관계는 그렇게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이 상황에서도 한미합동훈련이니 뭐니 자꾸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전제조건은 배부를 때 내세우고 지금은 그저 머리 숙이고 대화에 나오기를 북한에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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