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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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영구제명은 가장 큰 벌이다. 공식적으로 스포츠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프로선수들이나 감독들에게 영구제명은 사실상 밥줄을 끊는 것과 다름이 없다. 대개 영구제명은 죄질이 나쁜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 부과한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중범죄를 범하면 법적인 처벌과 함께 스포츠 단체들은 영구제명 조치를 취하게 된다. 법적 처벌 종료와 함께 오랜 시간이 흘러 여론이 무마되면서 영구제명을 철회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농구연맹(KBL)은 승부조작혐의로 제명된 강동희 전 원주 동부(현 DB) 감독의 제명 처분 요청을 기각했다. KBL은 15일 재정위원회를 열고 강 전 감독 안건을 재심의 후 이같이 결정했다. 강 전 감독은 10개 구단 감독 등의 탄원서를 모아 KBL에 제출해 선처를 호소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구인, 언론인, 법조인 등으로 구성된 재정위에서 일부 위원이 제명 처분을 풀어줄 것을 주문하며 찬반격론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위는 “강 전 감독이 국가대표 선수로서 각종 국제 대회에 출전해 국위선양에 기여한 점과 징계 후에도 지속해서 강사로 활동하며 후배 선수들을 위해 노력한 점은 인정한다”며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스포츠 환경 조성을 위해 본 안건을 기각하기로 했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KBL은 앞으로 이 사안에 대해 재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인천 송도고와 중앙대를 거쳐 기아농구단에서 선수로 활동한 강동희는 80~90년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였다. 선수 시절 프로농구 원년(97년) 초대 정규리그 MVP로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주 동부 감독 시절이던 2011년 2~3월 프로농구 정규리그 일부 경기에서 브로커들에게 4700만원을 받고 후보 선수들을 경기에 기용하는 수법으로 승부를 조작한 혐의가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현직 감독이 승부조작에 연루된 혐의가 드러난 것은 강동희가 처음이었다.

강동희 전 감독은 2013년 8월 징역 10개월에 추징금 4700만원을 선고받았고 한 달 뒤 KBL에서 제명됐다. 강동희는 형을 마친 뒤 프로스포츠협회 부정방지 교육 강사, 각종 봉사활동, 강동희 장학금 수여 등의 활동을 하며 자숙과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인간성이 좋기로 소문이 난 그가 승부조작혐의에 연루된 것은 돈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인간관계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농구 경기는 단체경기라 감독이 혼자서 승부조작을 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의정부 지검에서 ‘승부조작범’으로 몰아 구속해 징역형 판결을 받게 한 것은 다소 과한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법적인 처벌을 인정하고 오랫동안 근신과 속죄의 시간을 가졌다. 2020년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인터뷰게임’에 출연한 강동희 전 감독은 과거 자신의 승부조작 행위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프로그램에서 그의 인간적인 모습과 고통 받는 개인 생활 등이 소개됐다. 그는 제명 징계가 해제되더라도 실형을 산 점 등에 비춰볼 때 현실적으로 지도자 등으로 농구 현장에 복귀하기 힘든 상황에서 복권에 의지를 보인 것은 그만큼 명예 회복을 강하게 바랐기 때문이다. 현재 고등학생, 중학생인 두 아들이 모두 농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 강 감독이 복권을 시도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죄인 여부보다 변화하는 사람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동희 전 감독의 이번 KBL 재정위 복권 심사를 통해 교훈으로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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