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AP/뉴시스]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정상 회담이 열리는 스위스 제네바의 '빌라 라 그랑주'에 도착해 악수하고 있다.
[제네바=AP/뉴시스]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정상 회담이 열리는 스위스 제네바의 '빌라 라 그랑주'에 도착해 악수하고 있다.

예상대로 파격 없던 정상회담

양국 모두 관계 개선에 긍정적

핵·수감자·대사 협상 시작키로

핵심 갈등은 입장차 확인 그쳐

회담 승자는 푸틴? 반응 각각

[천지일보=이솜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서로 존중하며 입장을 솔직하게 전달했지만, 미러 관계를 냉전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끌어내린 갈등들은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평이 나온다.

16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스위스 제네바의 고택 ‘빌라 라 그렁주’에서 회담을 가졌다. 3시간 반 후에 두 지도자는 따로 등장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두 정상은 서로에 대해 존경을 표하며 양국이 더 나은 관계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초 미 백악관과 러시아 크렘린궁 모두 정상회담에 들어가기 전부터 기대치를 낮춰온 만큼 뿌리 깊게 박힌 갈등을 타결 지을만한 극적인 조치는 발표하지 않았다.

◆양국 ‘긍정적’ 자평… 일정 성과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마주 앉은 다섯 번째 미국 대통령이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로부터 합병하고 2015년 시리아 전쟁에 개입한 데 이어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생기면서 양국의 관계는 수년째 악화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은 무기 통제와 사이버 공격의 확산으로부터 시작해 긴급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한 워킹그룹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양국의 핵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을 대체하기 위한 핵협상과 사이버 안보, 상대국 수감자 문제 등을 협의하기로 했으며 자국으로 귀국한 양국 대사들을 조만간 임지로 돌려보내는 데도 합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의 관계 개선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라면서도 “희망의 빛이 보였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것은 신뢰의 문제가 아닌 자국의 이익과 검증에 대한 것”이라면서도 관계 개선이라는 전망도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미국에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어떤 행동에도 더욱 신중해졌다는 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CNN 기자가 푸틴 대통령이 그의 행동을 바꿀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를 묻자 “내가 언제 자신 있다고 했나? 그의 행동을 바꿀 자신은 없다”고 바이든 대통령은 쏘아붙이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의 행동을 변화시킬 방법은 세계가 그들(러시아 정부)에게 반응하고 세계에서 그들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아무런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핵발전, 사이버 안보, 그리고 다른 난제에 대한 그들의 논의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서는 계속해서 “알게 될 것(we’ll find out)”이라는 답을 거듭했다.

◆인권·해킹 문제 등서 평행선

두 정상의 단절은 크고 작은 다른 문제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의 사이버 테러 문제를 꺼내자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사이버 공격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은 “세계의 사이버 공격은 대부분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중남미 두 나라와 캐나다, 영국도 거론했다.

이와 관련 AP통신은 미국, 캐나다, 영국 모두 사이버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으나 실제 가장 피해가 큰 사이버 공격은 2017년 러시아 군사 정보국(GRU)에 의한 낫페트야 랜섬웨어로 당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100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를 포함한 러시아의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나발니의 유죄 판결을 옹호하며 대신 인종차별 항의 시위와 국회의사당 폭동 등 미국 내 혼란을 부각시켰다. 미국이 러시아의 권리에 대해 강의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가 본 것은 무질서, 혼란, 법 위반이었다”라며 “우리는 미국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지만 그것이 우리 땅에서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푸틴 대통령은 또한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문제에 대해서는 자국 군사 활동이 전적으로 국제법과 일치한다며 오히려 미국이 러시아 국경에서 역량 강화를 하고 있는 침략자라고 주장했다.

◆“푸틴 뜻 이뤄” vs “美 큰그림”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렇다 할 결론이 없던 만큼 반응 역시 천차만별로 나타났다.

회담 자체를 놓고 보자면 푸틴 대통령에게 승기가 돌아갔다는 평이 나온다.

위기그룹의 러시아 분석가 올레그 이그나토프는 “이번 회담이 바로 크렘린궁이 원하는 것”이라며 “입장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동등하게 미국과 대화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양국)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러시아에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푸틴이 바이든을 계속 시험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며 아직 관계 정상화의 시작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번 회담은 또한 양국 간의 관계 악화로 인한 여파를 잠시 멈추게 할 기회를 줬다는 관측도 나온다. 회담 후에는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추가 경제 제재나 푸틴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잠시나마 꺼릴 수 있고 이는 올해 말 러시아 총선을 치를 때 푸틴 대통령에게 유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CNN은 “푸틴은 제네바에서 그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얻었으며 엄청난 외교적 승리를 거뒀다. 단지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말이다”라고 평가했다.

장기적으로는 이번 회담이 바이든 대통령의 ‘큰 그림’이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이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던진 강력한 경고를 통해 러시아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는 조건을 설정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뉴욕타임스(NYT) 사설은 이를 위해 “바이든의 변함없는 강인함과 동맹국들 간의 확고한 전선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CNN 사설은 이번 회담에서 러시아와의 관계 관리,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정부를 비교시킴으로써 세계에 민주주의 모델이 우월하다는 점을 설득시키려는 바이든 정부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각기 다른 반응들이 오가는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재설정이 다시 시작됐다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 정부 시절 러시아 수석 고문인 피오나 힐은 NYT에 “우리는 이번 회담을 통해 이마의 땀을 닦을 수 있었다”며 “문제는 다음엔 무엇이 올 것인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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