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부터 2년여간 3번 횡단하며 DMZ 일대에서 사진 작업을 하던 어느 봄날 들꽃으로 피어난 녹슨 철모의 주인을 사진에 담았다. (제공: 최병관 작가) ⓒ천지일보 2021.6.16
1997년부터 2년여간 3번 횡단하며 DMZ 일대에서 사진 작업을 하던 어느 봄날 들꽃으로 피어난 녹슨 철모의 주인을 사진에 담았다. (제공: 최병관 작가) ⓒ천지일보 2021.6.16

민간인 최초 DMZ 사진작가, 횡단 3번

 

DMZ에서 아픔 넘어 평화와 생명 발견

 

유엔본부 DMZ사진전, 美CNN방송 보도

 

인도네시아 전시회 후 ‘K-포토’ 신조어

 

 

 

사진 시작한 이유 “어머니 삶 기록하려”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사진찍겠다 결심

 

사진작가협회 소속 되지 않고 외길 걸어

 

좌우명은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 말한다’

 

[천지일보 기자=정다준 기자] “비무장지대(DMZ)에서 꽃으로 피어난 녹슨 철모의 주인을 만난 날 펑펑 울었습니다.”

 

민간인 최초 DMZ 횡단 사진작가로 불리는 최병관 작가. 그는 분단 반세기 만에 휴전선 155마일을 2년여간 3번 횡단하며 10만컷 가까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기점으로 세계적인 사진작가 반열에도 올랐다. 하지만 DMZ 사진작가라는 다소 강한 이미지와 달리 그가 찍은 많은 사진은 수채화처럼 담백하고 아름답다. 등단 시인이기도 한 그의 사진 캡션은 사진의 내면까지 보게 만든다. 38년 전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사진을 찍으리라 하늘과 약속했다”는 최병관 작가를 인천 소래포구 인근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만났다.

 

‘그림보다 아름다운 사진을 찍겠다’는 작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최병관 작가의 사진들. 인천 선재도. (제공: 최병관 작가) ⓒ천지일보 2021.6.16
‘그림보다 아름다운 사진을 찍겠다’는 작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최병관 작가의 사진들. 인천 선재도. (제공: 최병관 작가) ⓒ천지일보 2021.6.16

◆사진을 시작한 이유 ‘어머니와 고향’

 

아파트 거실에 들어서니 어스름한 새벽에 한복 차림으로 철로 위를 걷는 어느 여인의 뒤태를 담은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의 주인공은 최 작가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가 사진을 시작한 이유다. “어머니의 인생을 사진으로 남기고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어요.”

 

그의 어머니는 45세에 홀로 됐다. 3남 4녀 중 다섯째로 자란 그는 감수성이 남달랐다. 사진작가가 된 뒤 약속대로 틈틈이 어머니의 삶을 사진에 담았다. 그렇게 찍은 어머니의 사진을 모아 2005년부터 약 2년간 ‘어머니의 실크로드, 바다가 그리워질 때’라는 제목으로 월간 객석에 연재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어머니가 지켜온 땅 인천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져 그는 인천의 다양한 모습도 사진에 담고 있다.

 

녹슨 철조망을 비집고 올라온 민들레 홀씨는 평화와 소망의 메시지를 준다. 이 사진은 2019년 9월 인도네시아 아세안연합 갤러리 초청전시회를 관람한 아세안연합 사무총장 부인이 가장 감동한 사진으로 꼽았다. (제공: 최병관 작가) ⓒ천지일보 2021.6.16
녹슨 철조망을 비집고 올라온 민들레 홀씨는 평화와 소망의 메시지를 준다. 이 사진은 2019년 9월 인도네시아 아세안연합 갤러리 초청전시회를 관람한 아세안연합 사무총장 부인이 가장 감동한 사진으로 꼽았다. (제공: 최병관 작가) ⓒ천지일보 2021.6.16

◆민간인 최초 DMZ 횡단 사진작가

 

그를 세계에 알린 DMZ 사진은 육군사관학교 개교 50주년 사진작업이 인연이 됐다. 육사 교정을 힘차면서도 서정적으로 담아낸 최 작가의 사진에 육사 관계자들이 감동해 먼저 DMZ 촬영을 제안했다.

 

1997년부터 2년여간 휴전선 155마일을 3번 횡단하며 사진작업을 했다. 언제 지뢰가 터질지 모르는 그야말로 목숨 건 작업이었다. DMZ 곳곳을 누비며 촬영하는 동안 그는 비무장지대가 전쟁의 아픔을 넘어 평화와 희망, 생명을 품은 땅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느 봄날 들꽃으로 피어난 녹슨 철모의 주인을 보며 그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 땅에 평화의 꽃을 활짝 피워달라”는 절규를 그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는 비무장지대의 긴장감과 평화를 향한 소망을 담은 사진을 모아 ‘휴전선 155마일 최병관의 450일간 대장정’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책을 발간했다.

 

그의 DMZ 사진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00년 일본 NHK TV는 ‘한국의 사진가 최병관편’을 전 세계에 방영했다. 2004년 한국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일본 동경사진미술관의 초청을 받아 ‘비무장지대의 비경’ 개인 사진전을 열어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모았다. ‘평화와 생명’의 메시지를 담은 DMZ 사진은 ‘특정국 작가의 전시는 하지 않는다’는 유엔의 전시 원칙도 깼다.

 

2010년 유엔본부에서 ‘한국의 DMZ, 평화와 생명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주관으로 최병관 사진전이 진행됐다. 미국 CNN방송이 최 작가의 DMZ사진 유엔전시를 소개했다. 2019년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은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이 ‘2019국가브랜드사업’으로 선정한 ‘한국의 DMZ 평화와 생명의 땅 최병관 사진전’을 1개월간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서 개최했다. 이어 아세안연합 갤러리에서도 초청 전시회가 성황리에 치러지면서 인도네시아에는 ‘K-photo’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그림보다 아름다운 사진을 찍겠다’는 작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최병관 작가의 사진들. 가평 아침고요수목원. (제공: 최병관 작가) ⓒ천지일보 2021.6.16
‘그림보다 아름다운 사진을 찍겠다’는 작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최병관 작가의 사진들. 가평 아침고요수목원. (제공: 최병관 작가) ⓒ천지일보 2021.6.16

◆“그림보다 아름다운 사진을 찍으리라”

 

“1983년 사진을 시작한 이후부터 사진전을 많이 다녔지요. 그런데 사진이 예술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부숴 버리고 사진을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2년 후 그는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의 책을 보면서 자신이 경솔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로 그는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사진을 찍겠노라 굳게 다짐했다.

 

실제 그의 어떤 사진은 마치 수채화나 추상화를 보는 느낌이다. 피사체만 돋보이게 찍어내는 그만의 사진 기법은 담백한 그의 성품과도 닮았다. 일체의 포토샵 없이 오직 사진 원판으로 이 모든 것을 해낸다는 것이 놀랍다. 자연이 주는 깊은 울림과 내면까지 사진에 담아내는 느낌이다.

 

DMZ 내에 있는 끊어진 철로 사진을 설명하고 있는 최병관 작가. (제공: 최병관 작가) ⓒ천지일보 2021.6.16
[천지일보=김미정 기자] DMZ 내에 있는 끊어진 철로 사진을 설명하고 있는 최병관 작가. ⓒ천지일보 2021.6.11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 말한다”

 

33살에 사진으로 삶을 바꾼 후 그는 수많은 고난을 겪었다. 그의 형제들조차도 미쳤다며 괴롭혔다. 오직 어머니의 삶과 고향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택한 사진작가의 길을 어머니만은 묵묵히 응원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는 1992년 문예한국 신춘문예 시부문으로 당선한 시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돈도 명예도 관심 없었던 그는 지금까지 사진작가협회나 문인협회, 시인협회에 등록조차 하지 않았다.

 

“제 뜻이 옳았기 때문에 오늘날 국내외적으로 인정받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 말한다’ 그게 제 좌우명입니다.”

 

그는 기성 사진작가들과 다른 길을 걸었기에 더 자유롭고 창조적인 자신만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수개월 수년간의 노력 끝에 얻어진 한 장의 사진이 폄훼 당하고 멸시당할 때는 참을 수 없는 고통도 느꼈다. 창작의 고통은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을 만큼 그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의 창조적인 사진은 고통의 산물이다. 새벽이고 낮이고 영감이 떠오르면 그는 사진 장비를 들고 뛰쳐나가는 일을 수십년 반복했다. 새벽에 벌떡 일어나 뛰쳐나가는 남편을 보며 놀랐던 그의 아내도 이젠 익숙해졌다.

 

‘그림보다 아름다운 사진을 찍겠다’는 작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최병관 작가의 사진들. 배곧신도시에서 만난 앙귀비꽃. (제공: 최병관 작가) ⓒ천지일보 2021.6.16
‘그림보다 아름다운 사진을 찍겠다’는 작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최병관 작가의 사진들. 배곧신도시에서 만난 앙귀비꽃. (제공: 최병관 작가) ⓒ천지일보 2021.6.16

◆“마음의 병 치유되는 사진 찍고파”

 

그는 요즘 양귀비꽃에 반해 다양한 양귀비꽃을 찍는다. 꽃에 반해 찍다 보니 꽃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졌단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 속 양귀비는 때론 수줍고 때론 자유롭고 때론 애달파 보인다. 사물과 공감하는 탁월한 감수성이 사진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피사체와 소통하는 듯한 그의 사진은 다시 봐도 색다르고 놀랍다.

 

조금 다르게 걸어와서 조금 더 특별하게 찍어낸 그의 사진은 그 자체로 독보적이고 아름답다. 특히 남다른 구도와 색감을 잡아내는 그의 능력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열정의 산물인 듯싶다. 적어도 그림보다 아름다운 사진을 찍겠다던 38년 전 그의 약속은 이미 지킨 것이 아닌가 싶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최 작가에게는 작은 바람이 있다.

 

“마음의 병이 깊은 현대인들이 제 사진을 보면서 치유가 되는 그런 사진을 찍는 게 소망입니다.” 이 소망 역시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의 사진을 통해 이미 이루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천지일보=김미정 기자] 민간인 최초 DMZ 횡단 사진작가로 널리 알려진 최병관 작가가 ‘어머니의 실크로드, 바다가 그리워질 때’라는 자신의 사진책을 들고 있다. ⓒ천지일보 2021.6.11
[천지일보=김미정 기자] 민간인 최초 DMZ 횡단 사진작가로 널리 알려진 최병관 작가가 ‘어머니의 실크로드, 바다가 그리워질 때’라는 자신의 사진책을 들고 있다. ⓒ천지일보 2021.6.11

최병관 작가는

 

인천광역시 논현동 산뒤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곳에 살아오면서 갯벌, 염전 등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쉼 없이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진가이며 시인이다.

 

민간인 최초로 휴전선 155마일을 1997년부터 2년여간 3번 횡단하며 사진을 찍었다. 2010년 유엔본부 초청전을 비롯해서 45회의 개인전을 열고 29권의 책을 출간했다. 어린이를 위해 발간한 DMZ 사진책 ‘울지마 꽃들아’는 초등학교 5-6학년 교과서에 실렸다. 2000년 일본 NHK TV에서 아시아의 작가로 선정해 전 세계에 방영했다. 2019년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과 아세안연합 갤러리에서 초청 전시를 했으며 인도네시아에 ‘K-photo’ 신조어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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