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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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겨운 단가 강상풍월 속에 단오는 ‘천중지가절’이라고 했다. 하늘이 준 가장 좋은 계절이란 뜻이다. 한문 투의 이 가사는 오월 단오 날 자연의 흥겨운 모습을 노래 한 것이다.

(전력) …오월(五月)이라 단오날에/ 천~중지가절(天中之佳節)이요~/ 일지지창외(日遲遲窓外)로다/ 창창(蒼蒼)한 으허~ 숲 속으 백설(百舌)~이 자자(孜孜)서라/ 때때마다 성언(聲焉)이요 산양자치(山梁雌雉) 나는 구나(하략).

‘오월이라 단오날 하늘 아래 좋은 계절이요, 창밖의 해는 느리게 가는 구나. 숲속에는 때까치가 부지런히 날고, 때때마다 새소리요, 산비탈의 암꿩도 흥겹구나….’

강상풍월은 임금에게 버림을 받고 귀양을 간 사대부의 호기어린 소리로 끝을 맺는다. 풀잎으로 엉성하게 엮은 집을 짓고 살며 나물먹고 물 마시는 생활도 대장부의 넉넉한 삶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절박한 삶 속에서도 유유자적한 사대부들의 여유다.

단오는 설날, 추석에 이어 우리 고유의 삼대명절 중 하나였다. 이날은 추천놀이(그네)를 하며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쑥을 머리 위에 꽂는 풍습이 있었다. 단오 음식으로는 쑥이 빠지지 않았는데 술의초(戌衣草)라 하여 수리취떡을 만들어 먹었다.

고전 춘향전의 러브스토리도 오월 단오날 광한루의 풍경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때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라 하는 기생이 있으되 삼남의 명기로서 일찌기 퇴기하여 성가(成哥)가라 하는… 이때는 삼월이라 일렀으되 오월 단오일이렷다. 천중지가절이라. 이때 월매 딸 춘향이도 또한 시서음률(詩書音律)운운….’

글방 이도령이 그네를 뛰는 춘향에게 반해 속전속결로 가연을 맺는다. 단오 풍정이 맺어 준 신분을 초월한 천생 연분의 사랑이었다.

단오 풍속도는 조선 후기 천재화가 혜원의 그림이 압권이다. 단오날 밖으로 나온 한 무리의 여인네들이 그네를 타고, 냇물에 몸을 씻으며 봄을 즐기는 풍경을 그렸다. 한 젊은 기생은 긴 흑발의 가체를 풀어 내린 채 미모의 여인과 담소를 즐기고 있다. 노랑저고리 빨강색 치마를 입은 기생은 그네를 타고 있다. 냇가에는 저고리를 벗은 여인과 하얀 다리를 내 놓은 기생들이 몸을 씻고 있다. 한 아낙은 가슴을 드러냈다. 바로 자식을 낳은 엄마임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당당하다. 조선 유교사회 단오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여인 해방의 풍경이다. 나무 건너 바위틈에는 더꺼머리 총각 두 명이 목욕을 하는 여인들을 몰래 훔쳐보고 있다. 혜원 풍속화의 해학 넘치는 관음미학이다.

그러나 어디 인간들의 삶에 기쁜 사연만 있겠는가. 조선 영조 때 지어졌다는 청구영언 ‘관등가’에 홀로 된 여인의 한탄이 노래로 적혀 있다.

‘오월 단오에 남의 집 소년들은 높고 높게 그네 매고/ 한번 굴러 앞이 높고 두 번 굴러 뒤가 높아/ 추천하며 노니는데 우리 님은 어디가고/ 추천 할 줄 모르는고.’

서울 도심에 위치한 강동구가 코로나로 지친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단오한마당’ 잔치를 열었다. 한동안 다수 관중이 모이는 행사가 열리지 않더니 조금은 완화된 모양이다.

단오의 대표 식물인 꽃창포 심기, 단오부채 만들기, 창포비누 만들기, 수리취떡 만들기 등 전통 풍습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마당이 열렸다. 또 가야금 듀오와 마술공연 등 남녀노소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공연을 펼쳤다.

인천 대교에서 마저 하루에 3명씩이나 투신한다는 어려운 세상, 힘들게 살고 있는 서민들이 천중가절인 단오의 즐거움을 되찾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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