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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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의 게으름과 가난은 조선을 여행한 외국인의 글에 자주 등장한다.

석 자가 되는 긴 담뱃대를 항상 물고 다니는 조선인의 모습은 게으름의 상징이었다. 심지어 일본 ‘국민신문’ 기자 마쓰바라는 여행기 ‘정진여록(1896년)’에서 조선인의 게으름을 이렇게 적었다.

“천성이 게으른 것으로 유명한 조선인은 놀고먹기를 정말 좋아한다.… 조선인들은 오늘만 있고 내일이 없다.… 저축할 생각도 없고 신분 상승하려는 관념은 더 더욱 없다. 그저 먹고, 자고, 죽는 운명을 갖고 있을 뿐이다.” (국사편찬위원회 편, 이방인이 본 우리, 2009, p250~251)

그런데 비숍 여사는 1894년에 조선과 시베리아를 여행한 뒤에 조선인의 게으름은 천성이 아니라 위정자의 수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숍은 1894년 4월 14일부터 5주간 남한강 주변 여행에 나섰다. 첫날 서울에서 50리 떨어진 곳에서 농민들을 봤다.

“만약 빈곤이라는 것이 생활필수품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한강 유역의 소작농들은 생활필수품이 부족하지 않았다.… 조선 사람들은 대개 생활필수품보다는 돈이나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게으르게 보였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의 결과로 얻은 것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없는 체제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게을러 보일 뿐이다. 한 사람이 ‘돈을 벌었다’고 소문이 나면 바로 근처의 탐욕스러운 관리에게 주목을 받게 되거나. 부근의 양반으로부터 대부금을 갚으라는 독촉에 직면하게 된다. (비숍 지음·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p72~73)

그런데 비숍은 1894년 9월에 두만강 근처의 시베리아 한인촌을 방문하고는 ‘조선인이 게으르다’는 생각이 틀렸음을 직시했다.

“기근으로부터 피난 온 조선인들은 자치권을 누리며 근면하며 청결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농부의 어슬렁대는 태도는 민첩한 행동으로 바뀌었고, 그곳에는 돈을 벌 기회가 많았다. 그들이 번 돈을 짜낼 양반도 관리도 없었으며, 재산에 대한 불안감보다도 신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많은 농부들이 부유했다.… 조선에서 나는 그들이 열등 민족이고 삶의 희망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나 프리모르스크에서 나는 나의 의견을 수정해야 할 이유들을 발견했다.” (위 책, P238~240)

한말 조선인들은 왜 게으르고 가난했나? 그 이유는 수탈 체계에 있었다.

비숍은 그녀의 저서 마지막 장(제37장 조선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계층적 특권, 국가와 양반들의 수탈, 불의(不義), 불안정한 수입, 최악의 전통을 수행해온 정부, 책략에만 몰두하고 있는 공식적 약탈자들,… 널리 만연돼 두려움을 주는 미신이 이 나라를 무기력하고도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내가 조선에서 겪은 첫인상이었다.

(중략) 나는 땅을 경작하는 이들이 최종적인 수탈의 대상이라는 것을 거의 지겹게 반복했다.… 조선에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 이렇게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전자는 허가받은 흡혈귀라 할 수 있는 양반 계층으로 구성된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민들이다. 하층민들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위 책, p458~462)

이렇게 영국 지리학자 비숍은 수탈 체제를 없애지 않으면 조선은 희망이 없다고 봤다. 지금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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