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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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배상 소송의 판결을 맡은 판사가 소를 기각하면서 한 말이 일파만파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이상한 논리를 들이댔기 때문이다.

판결의 핵심은 한일협정으로 인해 일본 또는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개인청구권은 제한된다는 것이다. 이 말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논리를 끌어왔는데 그 논리라는 게 모두 제 논에 물대기다. 계엄령까지 내리며 한일협정을 졸속으로 체결한 박정희 정권과 일본의 입장을 대변한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부는 일본 기업은 징용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면서 ‘대법원이 일본의 침략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배상판결을 내린 것은 국제법을 어긴 것’이라고 했다. 사실왜곡이다. 대법원은 그가 국제법이라 일컫는 ‘한일협정이 일제 침략의 불법성을 인정한 협정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행위를 당한 징용노동자는 피해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심판사 김양호는 “일본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자신들의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했다는 자료가 없다”고 했다. 과연 그러한가? 영국과 네덜란드는 자국이 침략한 국가들에 대한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보상을 거듭했고 독일 역시 마찬가지다. 독일은 나치의 불법적 침략 행위로 인한 피 식민국 인민의 고통에 대해 사죄하고 지금도 배상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김양호 판사는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나라와 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적어도 사실은 정확히 알고 판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양호 판사는 “만약 이 사건이 중재절차로 가 국제재판소에서 패소할 경우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에 치명손상을 입게 되고 이제 막 세계 10강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문명국으로서의 위신은 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라고 했다. 참으로 황당한 궤변 아닌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의 명예가 추락할까 봐 피해자 권리 구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원고 승소 판결을 하면 “여전히 분단국의 현실과 세계 4강의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상황에 놓인 한국으로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 세력의 대표국가 중 하나인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될 것”이고 “이는 결국 한미동맹으로 우리 안보와 직결된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으로까지 이어져 헌법상 안전보장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판결문을 이렇게 쓰는 판사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전범 국가의 전범 기업에게 피해를 당한 피해자가 권리를 구제 달라고 법원의 문을 두드렸더니 일본 기업이 배상하도록 판결하면 일본과 관계가 훼손되고 나아가 한미동맹도 훼손돼 헌법상 안전보장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피해자를 외면했다. 본인의 지극히 주관적인 예측을 근거로 권리구제를 내팽개친 행위이다.

김 판사는 지난 3월 이른바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일본 기업에 대한 소송비 추심 건에 대해서도 기각하면서 “현대 문명국가들 사이에 국가적 위신과 관련되고 우리 사법부의 신뢰를 저해하는 등 중대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이번 판결과 똑같은 논리 아닌가. 국가 위신을 위해 국민은 위신이 추락하고 희생되어도 된다는 말인가?

판사는 공인이다. 공인의 입으로 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가치전도의 사상을 온 누리에 설파했으니 그 후유증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개인의 가치관을 배설하는 공간으로 공적 공간인 법대를 사용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납세자로서 세금으로 떠받치는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자리를 차고 앉아있는 모습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판사는 법리로 판단해야 한다. 자신의 개별적 가치관에 따라 판단을 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고 내밀한 개인적 삶의 영역이다. 판사는 시대의 흐름과 시대정신을 읽지는 못해도 따라갈 줄은 알아야 한다. 이번 판결을 한 김양호 판사는 시대를 거꾸로 사는 사람 같다.

황당하고도 시대착오적인 판결과 언사가 출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라의 주권과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교육, 인권을 중시하는 교육을 하지 않는 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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