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not caption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헌장에 ‘어떠한 종류의 시위나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을 올림픽이 치러지는 장소, 경기장 등에서 금지한다’고 명시했다.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을 밝힌 것이다. IOC는 그동안 여러 올림픽을 치르며 국가나 선수들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단호한 입장과 조처 등을 취하며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IOC는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한국올림픽축구대표팀 미드필더 박종우가 일본과의 3·4위전에서 승리한 뒤 관중이 건넨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세리모니를 하자 곧 행동으로 제재를 가했다. 박종호는 최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경호원 두 명이 와서 옥상으로 끌고 갔다. 경호원 사이에 앉아 시상식이 다 끝날 때까지 죄인 취급을 받았다”고 뒤늦게 밝혔다. IOC는 이 문구에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며 그의 메달 수여를 보류시켰다. 박종우는 그해 겨울 스포츠중재재판소 판결 끝에 뒤늦게 메달을 받았다고 한다.

IOC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일본의 반발에 남북한 한반도기에서 독도를 빼라고 우리조직위 측에 통보를 해와 입장식 때 남북 선수단은 독도가 빠진 한반도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IOC가 한일 간 입장 차이가 큰 독도 문제로 인해 정치적인 격론에 말려들고 싶지 않은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2021년 도쿄올림픽을 40여일 앞두고 IOC는 독도 문제에 대해 종전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도쿄올림픽조직위 홈페이지에 독도를 자국 영토로 표시한 데 대해 한국 정부가 항의하며 중재를 부탁하자 도쿄조직위에 문의하라며 한 발 빼는 모습이다. 정치적인 행위에 대해 반대하며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는 종전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IOC가 두 얼굴을 보이고 있는 것은 독도 문제의 경우 정치적인 것보다는 경제적인 요인이 더 크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독도는 국제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영토분쟁을 벌이는 곳이라는 것을 IOC가 모를 리 없다. IOC는 독도문제에 대해 정치적인 것을 배제한다는 표면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은근히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IOC가 이런 자세를 취한 것은 이번 도쿄올림픽에 걸린 방송 중계권 수익과 일본 올림픽 파트너 수입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IOC는 과거에도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으나 올림픽이 정치에 오염되는 것을 방치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독일 아돌프가 나치즘을 확산시키는 무대로 활용하기도 했으며,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서방 60개국이 보이코트해 반쪽 올림픽으로 치러지기도 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소련 등 동구권의 보복 보이코트으로 반쪽 대회가 되기도 했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선 북한이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불참을 결정, 핵문제와 관련해 정치적인 복선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한 올림픽은 세계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인류사에 큰 기여를 한 바 있다. 하지만 IOC가 올림픽의 숭고한 가치와 전통을 이어 가지 못하고 정치적, 경제적 요인에 의해 흔들리며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면 올림픽은 앞으로 그 위상이 크게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독도 문제는 IOC가 두 얼굴을 가진 민낯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만 현실은 우리가 생각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움만 더해 간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