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not caption

왜 그랬을까? 북한이 노동당 규약에 제1비서제를 신설했다. 즉 지난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개정된 당 규약 제26조는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다” 이런 엉뚱한 조항을 집어넣은 것이다. 그러나 엉뚱해 보이지는 않는다. 수차 고민하고 또 고민해 넣은 것이 분명하다. 물론 북한은 이미 2대 세습인 김정일 시대부터 쌍두 수령제 정치문화에 대단히 익숙한 체제다. 그러나 징조는 무척 불길해 보인다. 김일성은 1972년 환갑을 지낸 후 본격적인 쌍두 수령제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당시 김정일의 나이 겨우 30이었다. 현재 김정은의 나이 겨우 37살이다. 그런데 왜 후계자나 대리인이 필요할까. 우리는 그의 건강을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싶다. 또 하나 더 그에게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이미 북한 권력은 2대 세습 때부터 작동 능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노동당 간부들에게 기만당하고 인민들로부터 배신당했다. 그걸 모르는 김정은이 지난 2009년 3대 ‘수령’에 책봉됐다. 원래 수령제는 유일적 지도자라기보다 복수의 리더 개념이다. 러시아 육군 대장 출신이며 유명한 철학자 내지 역사학자인 드미트리 볼코고노프는 일찍이 ‘크렘린의 수령들(1996년 초판)’이라는 책에서 그와 같은 철학을 전개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러시아에는 총 7명의 수령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레닌에서 스탈린,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고르바초프가 그들로 소련의 수령들은 유일지배가 아닌 공산당 집단지도체제의 상징으로 군림해 왔다. 소련의 수령들에게 개인숭배는 스탈린 이후 금기사항이었고 세습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북한 역시 1945년 고스란히 소련식 사회주의 제도를 도입했고 적어도 1967년 유일사상체계가 등장하기 전까지 노동당의 집단지도체제를 고수함에서 명분만은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김정일이 노동당에 둥지를 틀면서 북한 사회주의는 봉건주의로 타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북한은 하나의 당에 수령이 두 명인 쌍두체제로 줄달음치기 시작하더니 결국 3대 세습을 선택하고 사회주의 종말을 눈앞에 두게 됐다. 이번에 북한이 당 규약에 새로 삽입한 제1서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위원장 사망 후 과도기 시기 잠깐 도입했던 임시직제였다. 그런데 그걸 아예 신규 당규약에 버젓이 집어넣어 버렸다.

어떤 언론들은 제1비서는 현재 조용원이라고 보도하지만 그건 아니다. 조용원은 분명 조직비서로 호칭되고 있다. 조직비서의 권한은 대단하다. 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는 1967년 조직비서에 올라 북한 노동당을 ‘김일성의 당’으로 만든 장본인이고, 그의 제거 후 김정일은 무려 그 자리를 36년간 지키며 북한 노동당을 맑스-레닌주의 당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 당으로 만들었다.

노동당 제1비서 자리는 김여정 자리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북한은 아직 제1비서 직책에 대해 함구하고 있어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미 선출하고도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 공석인지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김정은이 그 자리를 자기 혈통이 아닌 자에게 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김정은 집권 2년 뒤인 2014년부터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조용원은 ‘김정은 그림자’로 불릴 정도로 최측근으로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그는 고위층의 잦은 물갈이 속에서도 조직지도부 부부장, 제1부부장을 거쳐 지난 1월 당대회에서 조직비서 겸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초고속 승진하며 공식 서열로나 실제 권력 서열에서 명실공히 김정은 다음가는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조직비서 승진 이후 지난 2월 제8기 2차 당 전원회의에서 주요 경제지표를 잘못 선정한 간부들을 신랄히 비판하는가 하면 3월 제1차 시·군당 책임비서 강습에서 ‘당 중앙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울 데 대해’를 강의했다. 그러나 조용원은 거기까지다.

김여정이 지난 1월 당대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자리를 내놓고 한 발 물러설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결국 쌍두 수령제 개막을 위해 막뒤로 잠깐 숨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쌍두 수령제는 결코 5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