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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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6월 3일, 철거민을 중심으로 한 무주택자들 수천 명이 ‘무주택자의 날’ 선포 대회를 열었다. 29년 전이니까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은 변했다. 무주택자들은 행복해졌을까?

무주택자의 날을 하루 앞둔 2일 최대 규모의 쪽방이 자리 잡고 있는 서울역 앞 동자동에서는 ‘집걱정없는세상연대’ 출범식이 열렸다. 31개 주거복지시민단체가 참여했다. 주거권 보장, 토지공개념, 계속거주권, 10년 동안 장기공공임대주택 200만호 공급, 투기근절, 주거의 탈탄소화, 주거비 지원 등을 외쳤다. 정부와 국회가 어떤 응답을 할지 궁금하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뒤 집값이 폭등했다. 한 주택 정보업체의 분석에 따르면 문재인 정권이 집권한 2017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가격은 87.4% 오르고 성동구, 노원구, 도봉구, 동작구는 100% 넘게 올랐다. 다른 지역 아파트도 100% 넘게 오른 곳이 수두룩하다. 아파트만 오른 게 아니다. 빌라와 단독주택도 덩달아 올랐다. 지난 4년 동안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전세가도 43%나 올랐다. 무주택자의 절망과 한숨 소리 깊어만 간다.

집값과 전세가가 오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규모 있게 공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매년 장기공공임대주택 13만호를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주거 상황이 매우 안 좋은 현실을 생각할 때 그리고 1~2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하지만 이 수치라도 최대한 빠르게 공급됐다면 숨통이 좀 트였을 것이다. 집권하자마자 ‘장기공공임대주택 13만호 공약’은 헛공약이 됐다. 5~6만호 규모로 축소됐다. 약속의 반 이상을 잘라 먹은 것이다.

둘째, 정권 초기에 계속거주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민주당도 집권 전에는 계약갱신제, 전월세상한제를 계속 외쳤다. 하지만 집권 뒤 이 말은 쏙들어갔다. 집권 마지막 해나 검토하겠다고 했다. 집권하자마자 이들 공정임대료 제도를 도입했다면 갭 투기도 상당부분 막을 수 있었고 전세가 상승도 통제 관리할 수 있었다. 이익 날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집을 매집할 이유는 상당 부분 사라졌을 것이다.

셋째, 임대사업자에 대한 파격적인 혜택 부여 때문이다.

주택소유자가 세입자에게 4년 또는 8년을 거주할 수 있게 하고 연 5% 인상률을 지킨다는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임대차 등록을 하면 종부세를 비롯한 세제 혜택을 파격적으로 부여하고 대출도 예외를 인정해 80%까지 담보 대출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주택을 매집하라는 강력한 신호가 됐다. 국가가 나서서 주택 매점매석의 판을 깔아준 것이다. ‘공급부족’이라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계속거주권과 전월세상한제 도입하라는 주거단체들과 세입자 대중의 외침은 외면하고 다주택에게는 꽃길을 깔아주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모든 임대인에게 임대인으로서 마땅히 져야할 책임, 곧 주거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해야하는 시점에 임대인에게 파격적 혜택을 부여해서 집을 빠른 속도로 매집하게 만들었다. ‘투기를 막으려면 권리를 보장하라’는 철칙을 외면하고 임대인 중심의 사고를 하다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

저금리 정책과 찔끔찔끔 핀셋 규제, 낮은 세율의 종부세 운용도 한몫 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에 주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파악을 못한 점과 공공성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지 못한 점을 들 수 있다. 이전 정부와 비슷한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주택문제 해결을 확신하는 오만함이 파국을 불렀다.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내야 했지만 대증요법 중심의 대응을 연속적으로 벌이다가 시기도 놓치고 명분도 잃었다. 부산시장, 서울시장 선거 패배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라도 근본적 해법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공공성 중심성은 끝없이 흔들리고 있고 공공성 포기마저 감지되고 있다. 심각한 파국이 기다리고 있다. 무주택자의 날을 맞아 정부와 민주당의 환골탈태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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