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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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 시편에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 년”이라고 나와 있다. 성경 시대에 인생은 70년이었다는 얘기이다. 동양에선 중국 당나라 시대의 시인 두보의 시 ‘곡강(曲江)’에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생에서 칠십을 넘는 이가 드물다는 뜻이다. 현재 100세 시대를 애기하고는 있지만 많은 이들이 70세를 넘지 못하고 병이나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1970년 6월생으로 다음 달 51세 생일을 맞는 미국 프로골퍼 필 미컬슨이 지난주 올 두 번째 메이저 골프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해 화제다. 100세의 딱 절반인 50세에서 11개월 지난 미컬슨이 20살 아래인 선수들과 겨뤄 전혀 밀리지 않고 우승까지 차지한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미컬슨은 역대 최고령 메이저 대회 우승자의 명예를 안았다. 최고령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은 1968년 이 대회에서 줄리어스 보로스(미국)가 당시 48세 나이로 우승하며 세운 바 있다.

그동안 세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40대 현역 선수들이 여러 명 있다. 지난 2월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에서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톰 브래디가 43세 나이로 정상에 올랐다. 세계남녀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40)와 세레나 윌리엄스(39) 등은 지난 10여년 이상 세계 정상급 실력을 보여준다. 지난 2월 자동차 사고로 중상을 입었지만, 타이거 우즈는 2년 전 43세의 나이로 5번째 마스터스 대회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50세를 넘어서 세계 정상에 오른 이는 없었다. 축구, 농구 등 격렬한 운동량을 요구하는 종목에선 50대 현역을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골프도 운동량이 다른 종목에 비해 많지는 않지만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이 뒷받침 돼야 하기 때문에 50대 선수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필 미컬슨 자신도 이번 PGA챔피언십 우승을 사전에 전혀 예상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컬슨은 한때 세계랭킹이 115위였다. 23세인 1993년부터 무려 26년간 세계랭킹 50위안을 지키다가 2019년 11월 처음으로 50위 밖으로 밀렸다. 작년 8월 이후 PGA투어에서 상위 20위 안에 한 번도 들지 못했으며 컷 탈락을 자주 했다. 시니어 투어인 챔피언스 투어에 3차례 나가 2승을 거두며 PGA에서는 점차 존재감을 잃고 있었다. 2004년 마스터스를 시작으로 2005년 PGA 챔피언십, 2006년과 2010년 마스터스, 2013년 디오픈에서 정상에 올랐으며 PGA투어에서 통산 44승을 기록했지만 그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잊힌 선수로 전락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PGA챔피언십에서 2라운드서 공동 선두에 오르고 3라운드서 단독 선두에 나서더니 마지막 4라운드에서 숨막히는 반전의 드라머를 연출하며 결국 2타차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나이의 약점을 체력 보완과 명상 등으로 극복해냈다. 몸무게를 10kg 이상 줄이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체력 훈련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또 정신력 강화를 위해 가끔 눈을 감은 채 명상을 하며 기분전환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명상을 하며 샷을 하는 그의 행동은 상당히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악마의 코스 설계가로 정평이 난 피트 다이가 설계한 키아와 아일랜드 골프리조트 오션코스는 바닷가에 붙은 링크스 코스로 바람이 많이 불고 러프가 무성해 선수들에게 큰 장애를 주었다. 미컬슨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보기를 하면서도 흔들릴 때면 잠시 명상을 하는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였다.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미컬슨이야말로 이번 PGA챔피언십에서 세계 골프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며 바야흐로 ‘50대 골프 청년 시대’를 연 주인공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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