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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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별주부전’의 바다 용왕은 거북이를 시켜 토끼의 간을 얻으려 한다. 우직한 거북을 골려주는 토끼의 위기탈출 간계가 재미있는 우화다. 폭풍의 바다에 제물로 바쳐진 심청은 용왕의 도움으로 살아나 진짜 왕비가 됐다.

고기잡이로 살아온 어민들은 바다가 두려웠다. 그래서 용왕의 심기를 달래는 굿을 많이 만들었다. 동해안에서는 별신굿, 서해안 배 연신굿, 위도 띠뱃놀이 모두가 바닷가의 민속이다. 강화도에서는 시선뱃놀이, 해운대에서는 용왕 맞이라고 부른다. 인천 지방의 갯마을 도당굿은 정월 대보름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축제로 승화됐다.

진도 씻김굿은 바다에서 죽은 뱃사람들의 망령을 위로하는 대표적 민속이다. ‘씻김’이란 이승에 살 때 맺힌 원한을 지우고 씻어준다는 뜻이다.

불가에서는 바닷가에 전지전능하다는 해수관음보살을 세워 안녕을 기원한다. 인도 보타사 관음에서 기원한 것으로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해변에서 관음도량이 많이 지어졌다. 한국의 해수관음 성지는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강화 보문사 등이 유명하다.

낙산사는 신라 때 당나라 유학을 중단하고 돌아온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의상은 강원도 양양에 수월관음이 머물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관음굴에서 여러 날을 기도한 대사는 마침내 관음을 만날 수 있었다.

관음보살은 ‘대나무가 쌍으로 돋아날 것이다. 그곳에 불전을 짓는 것이 마땅하다’고 전했다.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를 보면 대개 대나무 숲 바위에 반가로 걸터앉아있는데 이 설화를 표현한 것이다.

신라 스님 조신은 낙산사 관음에게 기도하여 사랑하는 태수를 아내로 삼아 살기도 한다. 조신이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됐다. 인간의 삶이 한낱 꿈과 같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설화다.

충주 달천강이 고향인 시인 신경림은 바다의 숨겨진 힘을 민중의 분노에 비유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저 바다 언제까지나/ 잠들어 있으리라 생각했으니/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아우성 치고 덤벼드는 것을 보면/ 얼마나 신바람 나는 일인가/ 그 성난 물결 단번에 이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 씻어 내리리 생각하면

70년대 민요가수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은 헤어진 애인을 그리는 가요다. ‘아아아 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은 없었을 것을/ 어제 온 연락선은 육지로 가는데/ 할 말이 하도 많아/ 목이 메어 못합니다./ 이 몸이 철새라면 이 몸이 철새라면 뱃길에 훨훨 날아…’

우리에게 바다는 이로운 터전이기도 하지만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태풍이 불면 많은 어민들이 실종되기도 한다. 때로는 무섭고 거대한 비극의 현장이 된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참사가 생긴지 7년. 아직도 그 아픈 상처가 봉합되지 않은 것 같다. 다시 침몰 원인을 재조사 한다는 것이다. 유가족 및 관계자들은 성역 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조사의 본격화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오늘이 바다의 날이다. 꿈속에 빛깔이 맑고 깨끗한 바다를 보게 되면, 큰 재물이 생기거나, 안 좋던 건강이 회복되고, 마음의 상처가 사라지는 길몽이라고 한다.

망망한 바다를 등대 없이 항해해온 듯한 대한민국, 심기일전해 다시 도전하는 계기를 삼아야 한다. 비극의 바다가 아니라 미래 자원의 보고로 개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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