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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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꽃이 개화 만발한 워싱턴에서 굳게 손잡은 한미 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존중한다는 뜻을 공동성명에 포함하면서 남북관계에 새 봄이 다시 찾아올지 세인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2018년 4.27의 감격은 아직 그대로이지만 과연 그 속내마저 살아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면 이건 그야말로 ‘내숭’이 아닐까.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첫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2018년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8년 남북정상 간 약속인 판문점 선언 등을 존중하면서 대화와 외교를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판문점 선언 존중은 남북관계상 운신의 폭을 넓히고 기존 남북 간 합의를 바탕으로 남북교류가 계속 추진될 수 있는 동력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알려진 대로 4.27 판문점 선언에는 종전선언과 완전한 비핵화 외에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 전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평화수역 전환 등 다양한 남북협력 방안들이 듬뿍 담겨있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양국 정상이 공동성명에 판문점 선언을 명시한 것은 남북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한국 정부에 일정한 독자성을 부여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물러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정상 간 톱다운 방식의 협상을 추구하며 일괄타결을 노렸던 것과 다르게 남북관계에 자율성을 부여하며 북핵문제 해결 여건과 대화 분위기부터 조성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일환으로도 보인다는 긍정적 평가다. 이로서 일단 판문점 선언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남북교류 사업을 계속 추진해나갈 동력은 확보한 셈이다.

한국은 그동안 북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치료제를 비롯한 다양한 보건·의료 협력 방안과 북한 주민 지원을 위한 식량·비료 민생협력을 제안해 왔다. 이런 긍정적인 평가에도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 북한을 대화로 유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없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인권 문제가 거론된 점은 북한이 쉽사리 대화 테이블로 나오도록 하는 데 제약 요소로 꼽힌다.

더욱이 양국이 공동성명에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을 명시했고, 한국의 미사일 주권을 회복시키는 사거리 제한을 완전히 해제하기로 합의한 것은 북한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대목이란 지적도 나온다. 북한의 근래 태도가 한반도 평화환경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북한은 여전히 코로나19 방역에 역량을 집중시키며 대외 교류에 몸을 사리고 있고, 최근까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 문제 등으로 남측을 거칠게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하는 등 당장 남북관계를 해소할 환경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가는 국내 정치 일정까지 고려하면, 임기 말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획기적인 전환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평양이 한국에 보수정권보다 현 정권이 당분간 유지되길 바란다는 것은 자명하다. 만약 보수정권이 들어서 대북삐라도 재개하고 미국과의 군사협력이 돈독해진다면 대북제재의 칼날은 더욱 예리해질 것이다. 바로 이것이 김정은 정권의 심사숙고 딜레마이다. 하지만, 출범 초기인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메시지를 계속 발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은 미국의 의중을 분석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이 깊어질 것이란 한 줄기 희망도 엿보인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도 마냥 자존심 하나로 체제 재생산을 이끌어갈 동력은 거의 쇠진한 상태이다. 한반도 환경을 평화공존 상태로 끌고 가느냐, 아니면 미국의 강경파들이 의도하는 대로 끌고 가느냐 하는 결정적인 변수는 모두 북한 몫이다. 따라서 김정은 정권이 이성을 어느 정도 찾고 올해 상반기 중 태도를 바꾼다면 한반도의 평화 안정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 부디 북한 당국의 판문점 정신 회복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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