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not caption

1990년대부터 ‘목민심서’는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의 애독서로 널리 알려졌다. 1992년에 소설가 황인경은 ‘소설 목민심서’ 제1권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작고한 베트남의 호치민은 일생동안 머리맡에 목민심서를 두고 교훈으로 삼았다고 한다.”

1993년에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남도답사 1번지’의 강진 편에서 정약용을 소개했다.

“심지어는 월맹의 호지명이 부정과 비리의 척결을 위해서는 조선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필독의 서라고 꼽은 사실, 이런 것으로 그분 위대함의 보론으로 삼고 싶다.” (위 책, 1993, p 54)

2017년 11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 호치민 시에서 열린 ‘호치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 개막 축하 영상 메시지에서 말했다.

“베트남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호치민 주석의 애독서가 조선 시대 유학자 정약용 선생이 쓴 목민심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대통령까지 공개행사에서 언급했으니 ‘호치민의 목민심서 애독설’은 정설(定說)처럼 됐다.

그런데 2019년 4월 24일에 ‘사단법인 다산연구소’ 게시판에 베트남 교민잡지사 ‘굿모닝베트남’이 ‘목민심서와 호치민 주석’에 대해 질문했다.

“목민심서를 호치민 주석이 탐독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박헌영이 목민심서를 호치민 주석에게 선물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위의 이야기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어서 문의드립니다.”

‘다산연구소’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호치민 주석의 목민심서 탐독 이야기는 근거가 전무 합니다. 국제 레닌학교 시절, 박헌영과 호치민 주석의 목민심서 일화도 확인된 바 없습니다. 이상 다산연구소 입장입니다.”

‘다산연구소’가 이런 입장을 밝히다니 매우 놀랍다.

한편 2019년 11월 25일에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은 ‘목민심서와 호치민’ 칼럼에서 “2004년 7월 9일 자 칼럼에서 호치민이 책이 닳도록 목민심서를 읽었다고 쓴 것은 잘못이었다”고 고해했다.

박 이사장은 2004년 7월 9일의 칼럼은 ‘목민심서를 펼쳐보라’는 6월 22일 자 동아일보 고승철 칼럼을 그대로 믿고 썼다는 것이다.

박석무 칼럼은 이어진다.

“그 뒤 저는 2006년 1월 베트남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 호치민 박물관을 찾아가 관장에게 그런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그곳에서도 전혀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연합뉴스 특파원을 만나 ‘호치민 박물관과 집무실에는 목민심서가 없다’라고 말해 그런 내용의 기사가 바로 연합뉴스에 올라왔습니다.”

박 이사장이 언급한 연합뉴스 기사는 2006년 1월 9일 자이다.

“호치민 박물관의 응웬 티 띵 관장은 9일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등 한국방문단과 만난 자리에서 ‘호치민 박물관에는 고인과 관련된 유품 12만여 점이 소장돼 있지만 목민심서가 유품 목록에 포함돼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다’고 목민심서 소장 사실을 사실상 부인했다고 배석 인사가 밝혔다.”

박석무 칼럼은 이렇게 끝맺는다.

“신문의 칼럼을 믿고 그대로 옮겨 썼던 저의 불찰이 매우 큽니다. 어떻게 알아보거나 확인해보아도, 호치민과 목민심서의 관계는 지금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다산연구소’가 ‘호치민의 목민심서 탐독 이야기는 근거가 전무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박 이사장이 ‘신문의 칼럼을 믿고 그대로 옮겨 썼던 저의 불찰이 매우 크다’고 한 점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거짓은 결코 진실을 이길 수 없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