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천지일보 2021.4.19
압둘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천지일보 2021.4.19

압둘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인터뷰 

 

프랑스 유학 대신 한국 택해 대한민국 시리아인 1호 유학생으로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헬프시리아’ 설립해 난민 도와

지난해 말 한국 귀화… “한국과 시리아 잇는 가교 되고 싶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10년 전, 민주화를 부르짖는 국민을 정부는 총과칼로 학살했다. 민주화 시위가 정부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된 이후, 시민들도 무기를 들고 대응했다. 그렇게 시리아 내전이 촉발됐다. 내전 속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인 IS(이슬람 국가)가 시리아 동부를 장악했고, 미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시리아 내전에 본격 개입하면서 시리아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졌다. 이 과정에서 수십만이 넘는 인구가 전쟁 속에 목숨을 잃었고 수백만의 시리아인이 난민이 돼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100만명을 넘어섰으며 2011년 2300만명이던 인구는 2018년 1691만명이 됐다.

시리아 내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 비극이 시작되기 한 해 전, 한국에 시리아인 1호 유학생으로 입국한 압둘와합(알무함마드아가압둘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을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고국의 소식을 묻는 질문에 “시리아의 혼란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복잡해지고 있다”며 “현재는 미국, 터키, 이란이 각각 통제하는 지역이 나뉘어져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기 굉장히 어렵다. 때문에 이산가족도 생기고 친척이나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리아 명문대로 꼽히는 다마스쿠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와합은 현지서 변호사로 일하다 장학금을 준다는 프랑스 대신 한국행을 선택했다. 현지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의 친절과 상냥함에 반해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커질 무렵 한국 국민과 시리아 국민 사이의 ‘가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와합은 2009년 한국을 오게 됐다. 물론 주변 지인들의 만류도 거셌다. 시리아와 한국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와합은 한국에서 문화, 지식을 배우고 시리아로 돌아가 시리아인들에게 한국에 대해 가르치고자 마음먹었다고 했다.

◆유학생에서 구호단체 대표로

그러나 그다음 해 발생한 내전이 와합의 목표를 바꿔 놓았다. 2011년 중동과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아랍의 봄’이라고 불리는 대대적인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시리아에서도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그러나 정부는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했고 이는 곧 내전으로 번졌다. 이 와중에 IS는 시리아 동서부와 이라크 북부를 점령했다. 수많은 시리아인이 IS에 의해 참수됐다.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시리아인들은 하루아침에 고향을 잃고 타국을 제2의 고향으로 삼는 난민이 됐다. 수백만의 시리아인은 살기 위해 이웃나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와합의 가족들도 IS에 집과 땅을 빼앗겨 터키로 피신했다. 부실한 배에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올라탄 채 이동하는 도중 배가 난파돼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은 연일 국제뉴스 지면을 장식했다. 

지난 6일 서울 명동에서 헬프시리아 회원들이 세 살짜리 시리아 난민 쿠르디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왼쪽). 압둘 와합 기획국장이 레바논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난민들의 생활을 들여다 보고 있다. (사진제공: 헬프시리아)
지난 6일 서울 명동에서 헬프시리아 회원들이 세 살짜리 시리아 난민 쿠르디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왼쪽). 압둘 와합 기획국장이 레바논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난민들의 생활을 들여다 보고 있다. (사진제공: 헬프시리아)

예기치 못한 고국의 비극에 와합은 우울증까지 겪기도 했지만 그는 넋놓고만 있지 않았다. 2013년 몇몇의 한국 친구들과 함께 시리아 난민을 돕는 ‘헬프 시리아’를 만들어 시리아 난민들을 적극 돕기 시작했다. 와합은 난민법을 공부하면서 시리아 정부를 비판하고, 어려움에 처한 시리아인들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시리아 정부의 압박이 오기 시작했다. 정부는 와합의 여권 갱신을 막기 위해 서류를 발급하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와합을 옭아맸다. 시리아에 거주하는 삼촌은 와합의 여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다 시리아 정부군에 붙잡혀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결국 와합은 지난해 귀화를 선택, 지난해 10월 어렵게 한국 국적을 획득했다.

◆ “코로나19로 시리아 내부 난민 상황 악화”

와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시리아 내부 난민들의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고 했다. 주변국들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현지 난민촌 방문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시리아 난민들을 위한 후원도 하나둘 끊기기 시작했다.

와합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온라인으로만 난민 캠프 분들과 연락하면서 개인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오랜 후원자분들마저 ‘이번달까지만 후원하겠다’고 전해왔다”고 덧붙였다.

압둘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이 19일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4.19
압둘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이 19일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4.19

시리아 내부 난민들의 경우 코로나19 감염 위험도도 매우 크다고 했다. 와합은 “시리아가 유엔으로부터 백신을 받는다고 해도 정부가 난민 캠프에는 나눠주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난민캠프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격리공간도 없기 때문에 캠프 전체를 고립시키고 있다”고 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와합은 시리아 난민들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시리아 난민 캠프 내 학교를 짓는 프로젝트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미 와합과 헬프시리아는 ‘미래를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모토아래 지난 2019년 시리아 알레포의 난민촌 인근에 ‘이끄라(읽으라는 뜻의 아랍어) 초등학교’를 세웠다. 와합은 코로나19로 학교가 휴업과 운영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현재 학교에선 1000여명 정도의 주둔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 “한국에서 없어져야 할 문화, 차별”

(출처:교보문고)
(출처:교보문고)

최근 와합의 오랜 친구이자 헬프시리아 활동을 함께하는 김혜진씨는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간했다. 이 책에는 그간 헬프시리아의 구호 활동에 대한 생생한 기록과 고통받는 시리아를 도와 달라는 호소가 담겨있다. 특히 책에는 와합의 사례를 통해 무슬림과 난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한 한국사회의 편견과 차별의 시선도 돌아보게 만든다.

와합은 이슬람 사원 건축 반대 등 한국 내 종교 차별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협박 메시지나 연락이 자주왔었어요. ‘너 같은 무슬림이 우리나라에 있으면 힘들어진다’ ‘한국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너희(무슬림) 때문에 위험하다’ ‘너희 같은 무슬림이 오면 여성들이 다 힘들어질 것이다… 안타까웠어요”

교회 관계자들의 노골적인 개종 권유를 받고 놀란 적도 있었다. 시리아에서는 없던 문화기 때문이다. 와합은 “시리아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존중해주는 나라”라며 “예를 들어서 시리아에서는 이슬람 공휴일은 이슬람 공휴일대로 또 기독교 공휴일은 기독교 공휴일대로 쉬며 행사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와 경험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봐요. 예를 들어서 언론이 IS를 지칭할 때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라고 쓰는데 사실 IS는 이슬람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무장테러단체일 뿐이거든요. 그런데 이걸 모르는 사람들은 IS를 듣고 이슬람 전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돼요.“

와합은 한국에서 인종이나 종교로 인해 차별받는 문화가 없어지길 바랐다. 특히 혐오 발언 처벌 등 법적 장치를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편견과 차별 없는 세상을 이룰 수 있을까. 와합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먼저 사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별을 받는 그들도 누군가에겐 친구이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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