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김정호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이사장이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정부의 동자동 주택개발 사업 발표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5.19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김정호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이사장이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정부의 동자동 주택개발 사업 발표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5.19

[인터뷰] 김정호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이사장

10년 넘게 동자동 쪽방생활

“주민 위해 공공개발 ‘필수’”

정부, LH·SH 통해 개발예정

“집주인들, 민간개발 요구해”

“공공 반대 이유, 이윤 추구”

“민간개발, 주민 살 곳 없어”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동자동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민간개발이 아닌 ‘공공개발’입니다. 실제 이곳에 살지도 않는 토지·주택 소유자들이 주민행세를 하면서 민간개발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은 주민들이 바라는 게 절대 아닙니다.”

우리나라 최대 쪽방밀집 지역인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김정호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이사장은 ‘정부의 동자동 주택개발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이 어떠하냐’는 물음에 얼굴을 붉히며 이같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동자동 쪽방촌을 알게 된지는 20년이 넘었고, 이곳에 실제 거주한지는 10년이 넘었다는 김 이사장은 주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고 했다.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을 상대로 빼앗고 집 밖으로 내어 쫓는 것을 셀 수 없이 많이 봐왔고 이제는 정말 이골이 날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부의 발표로 ‘이제 주민들과 함께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겠구나’했는데 실제 살지도 않는 집주인들이 공공개발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너무 힘이 빠집니다. 이건 해도 해도 정말 너무한 겁니다.”

◆“정부사업, 공공임대 비중 50%”

올해 2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쪽방촌 정비계획)이 발표된 이후 서울역 동자동에 이목이 쏠렸다. 우리나라 최대 쪽방밀집 지역이 최고 40층 높이의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된다는 소식에 너도 나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사업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동사업시행자로 참여하며,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용산구가 행정·재정적 지원을 담당하게 된다. 공공 재개발이 이뤄지면 관련 법령에 따라 35% 이상의 공공임대 주택이 만들어진다.

특히 동자동 사업의 경우 공공임대 비중이 50%로 결정돼 있다. 문제는 동자동 토지·주택 소유자들이 더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해 민간개발을 원하고 있고, 정부의 공공개발 계획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해당사업이 민간개발로 이뤄질 경우 임대주택 의무비율은 15%밖에 되지 않는다.

“동자동 집주인들은 막말로 자신들이 세놓은 방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관심도 없었어요. 찾아오지도 않았고요.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방을 놔야 하니 돌아가신 분의 방을 청소해달라고 하더군요. 기가 막히죠. 그런데 정부 발표 이후 찾아와서 하는 말이 민간개발로 하면 더 좋은 주택을 지어 줄테니 함께하자고 하는 겁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거냐고요.”

한해에도 수십 차례나 돌아가신 분들의 장사를 지내며 안타까운 심경을 가졌던 김 이사장은 또 다시 얼굴을 붉히며 울분을 토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김정호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이사장이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정부의 동자동 주택개발 사업 발표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5.19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김정호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이사장이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정부의 동자동 주택개발 사업 발표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5.19

동자동 일대 쪽방촌 4만 7000㎡에 2410가구의 공공주택단지가 들어서면 현재 1000여명 정도인 쪽방주민 등 기존 거주자의 재정착을 위한 공공주택 1450가구(임대주택 1250가구, 분양주택 200가구)와 민간분양주택 960가구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민간개발로 이뤄지면 주민들이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는 일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게 김 이사장의 설명이다.

◆“쪽방촌, 주거환경 너무 열악”

김 이사장을 만난 동자동 소재 새꿈어린이공원에선 때마침 ‘동자동 쪽방촌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벽돌집, 주방 싱크대 바로 옆에 설치된 좌변기, 깨지고 금가고 이빨 빠진 세면장 바닥타일, 물이 새 비닐로 가린 집안 천장 등 열악한 쪽방의 현실이 그대로 담긴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사진을 설명하면서 다시 목소리 톤이 올라간 김 이사장은 “이게 지금 쪽방의 현실”이라며 “그나마 이 정도면 A급에 해당한다. 더 심한 쪽방도 많이 있다. 이런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소위 말해 ‘가진 사람’들은 이런 현실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 배만 불리기에 급급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LH사태’도 이번 정권에서 터져서 그렇지 전혀 없던 일이 아니다. 부동산 투기 문제는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이미 많이 있었던 일”이라며 “가진 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런 모습을 버리고, 우리나라의 발전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훗날을 위해서라도 조금씩 서로 양보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호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이사장이 서울 용산구 동자동 소재 새꿈어린이공원에서 ‘동자동 쪽방촌 사진전’에 전시된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열악한 쪽방의 현실을 사진에 그대로 담아 공공주택사업의 필요성을 드러냈다. ⓒ천지일보 2021.5.19
김정호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이사장이 서울 용산구 동자동 소재 새꿈어린이공원에서 ‘동자동 쪽방촌 사진전’에 전시된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열악한 쪽방의 현실을 사진에 그대로 담아 공공주택사업의 필요성을 드러냈다. ⓒ천지일보 2021.5.19

◆“주민들, ‘집다운 집’ 살길 원해”

‘서로 양보하고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 김 이사장은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에서 이와 같은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초대 이사장부터 7~8대인 자신에 이르기까지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 모두가 함께 ‘신뢰’를 가장 기본으로 여겨왔다고 했다.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는 주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소액대출을 목적으로 만든 주민들의 자체적인 협동조합이다. 김 이사장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운영되는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는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1년 3월 19일에 창립됐다”며 “1만원이든 2만원이든 6개월 10만원 이상을 채우면 다른 조건 없이 50만원씩 다 대출을 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초창기 시행착오가 있을 줄 알았으나, 대출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돈을 갚지 않은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며 “물론 돈을 갚을 때까지 1년이 넘는 사람도 있었고 2년이 넘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민들은) 이 돈이 어떤 돈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다 갚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처음부터 신뢰가 두터웠던 것은 아니지만 차츰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줬고, 함께 협동조합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됐다”며 “서로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동자동 주민들도 똑같은 사람이고,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저는 동자동 공공 재개발 사업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최소한 ‘집다운 집’에서 살길 원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주민들을 도와줘야 합니다. 더 이상 ‘있는 자들’의 목소리에 ‘힘없는 사람들’이 묻히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소재 새꿈어린이공원에서 ‘동자동 쪽방촌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열악한 쪽방의 현실을 사진에 그대로 담아 공공주택사업의 필요성을 드러냈다. ⓒ천지일보 2021.5.19
서울 용산구 동자동 소재 새꿈어린이공원에서 ‘동자동 쪽방촌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열악한 쪽방의 현실을 사진에 그대로 담아 공공주택사업의 필요성을 드러냈다. ⓒ천지일보 202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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