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손주
손용상(1946 ~ )
봄날
손주 손잡고 공원엘 갔다.
연못가 돌배나무 아래서
문득
아이가 탄성을 질렀다.
하부지, 여기 싹이 트고 있어요.
들여다보니
나뭇가지에서
여린 새순이 돋고 있었다.
나는 마른 나무였지만
손주는 새싹이었다.
[시평]
할아버지가 어린 손주와 봄나들이를 나간 모양이다. 나이가 든 사람들에겐 이 봄이 그 봄이고 지난봄도 그 봄이라, 그렇고 그렇겠지만, 이제 막 세상을 바라보고 또 말을 시작하는 어린 아이에게 봄은 어쩌면 너무나도 새로운 세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 막 돋아나는 싹도 참으로 새롭고 신선하게 보일 수가 있다. 겨우내 굳어져 있던 땅을 뚫고 막 돋아나는 싹을 보고 어린 손주는 탄성을 지른다. “하부지, 여기 싹이 트고 있어요.” 봄에 싹이 트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인데, 어린 손주에게는 참으로 새롭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큰 발견을 한 그 사실을 소리 질러 이야기를 한다.
봄을 맞아도, 봄의 새싹을 봐도, 지난봄의 그 봄이나 올해의 이 봄이나, 그 봄이 그 봄인 나이 든 사람들의 무뎌진 그 감성은 바싹 마른 나뭇가지와 같이, 그런 모양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나 어린 손주는 세상의 무엇을 봐도 새롭고 경이로울 수 있는, 이제 막 돋아나는 푸릇푸릇한 새싹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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