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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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7월 15일의 안종덕의 상소는 마무리 단계이다.

“논하는 사람들은 모두 대한제국에 인재가 없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나라에 인재가 없는 것이 걱정이 아니고, 폐하의 마음에 신의가 부족한 것이 더 걱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폐하께서 신의를 세우기만 하면 청렴과 근면, 공정 세 가지는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시행될 것입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못하고 미더운 말은 아름답지 않다’라고 했으며, 또 ‘쉽게 수락하는 말에는 틀림없이 신의가 적고 자꾸 고쳐 말하면 일이 잘되기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폐하는 늘 말을 곱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많은 경우 말에 신의가 없고, 또 늘 쉽게 수락하였다가 번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의가 적습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어떤 문제에 부닥치면 반드시 먼저 마음속으로 이 일이 청렴한 것인가 탐욕스러운 것인가, 근면한 것인가 게으른 것인가, 공정한 것인가 사사로운 것인가를 요량해 보고 청렴한 것이면 나아가고 탐욕스러운 것이면 물리치며, 근면한 것이면 힘쓰고 게으른 것이면 경계하며, 공정한 것이면 시행하고 사사로운 것이면 그만두면서 한결 같이 신의를 굳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아!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믿어 준 다음에야 간하는 법이다. 그 임금이 믿지 않으면 자기를 헐뜯는다고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신은 하찮은 사람으로서 폐하에게 믿음을 받을 만한 것이 없지만 그저 바른 말을 해야 하는 직책에 있다는 이유로 감히 남이 하지 못하는 말을 했습니다.

신의 허리가 작두에 잘려도 부족하고 신의 목이 도끼에 찍혀도 모자라리라는 것을 제 자신이 잘 알면서도 감히 이처럼 망령된 말을 하면서 두려움을 모르는 것은 정신병자라서 이러는 것이겠습니까?

지금 나라가 위태로운 때에 폐하가 청렴과 근면, 공정과 신의로써 백성들을 안정시키는 근본으로 삼으리라 마음먹고 여러 신하들이 간하지 못한 데 대해 간언했으니, 지금이야말로 위태로움을 안정으로 전환시켜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숨김없이 말한 것은 정사에 만분의 일이나마 보탬이 될 것을 기대한 것이지, 자신에게 미칠 화나 복을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신의 마음을 살피시고 만일 티끌만큼이라도 비방하려는 데서 나온 것이면 당장 저를 처단함으로써 공경치 못한 신하들을 경계시키소서. 그러나 만일 충성하려는 데서 나온 것으로 자신의 안위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은 것이라면 부디 살펴보고 채택해 시행하소서.

신의 몸이 주륙을 당하더라도 드린 말씀이 시행된다면 신은 죽어도 살아 있는 것과 같겠지만, 혹시 덮어둔 채 살피지 않고 마치 예전에 신하들이 연명으로 상소를 올렸을 때처럼 죄도 주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신다면 신은 죽어도 여한이 남을 것이고, 또 그것은 폐하가 아랫사람을 신의로 대하는 도리도 아닐 것입니다.

오로지 명철한 폐하의 재결(裁決)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신이 지내는 중추원 의관 벼슬을 속히 체직하심으로써 죽어서 고향에 묻히려는 소원을 이루어 주소서.”

이에 고종은 간단히 비답했다.

“말은 물론 옳다. 그렇지만 시의(時宜)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대는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살피라.”

고종이 언급한 시의(時宜)는 무슨 의미인가? 안종덕의 상소가 시의적절(時宜適切)하지 않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러일전쟁을 예의 주시하라는 의미인가? 아무튼 고종은 안종덕의 상소가 탐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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