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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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캐디로 한 때문인 듯 둘의 이야기에서는 골프보다 사랑 냄새가 더 풍겨나오는 것 같았다. 버디를 잡을 때 신나서 둘이 손뼉을 마주 치며 좋아했다. 보기나 더블보기를 내주며 타수를 잃을 때는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지만 서로의 표정은 그렇게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 같으면 굳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 텐테, 그는 아내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마치 미안하다는 뜻을 알리는 것처럼 말이다. 아내가 필드에서 함께 자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9일 성남 남서울CC에서 끝난 제40회 GS칼텍스 매경오픈골프대회에서 허인회(34)는 아내 육은채씨(33)와 호흡을 맞춰 정상에 오르며 우승 상금 3억원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아내에게 트로피를 바쳐 감동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필드에서나 필드 밖에서도 영낙없는 ‘사랑꾼’이었다. 그의 프로대회 우승은 2015년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 우승 후 6년만이었다. 통산 4승째를 거두었는데 오랜 전통의 메이저급인 이번 대회 우승으로 5년짜리 투어카드를 받을 수 있게 돼 앞으로 안정된 선수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허인회는 한때 ‘게으른 천재골퍼’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재능은 매우 뛰어나지만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겨 기대한만큼 성적을 많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한체대를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그는 13년 전인 2008년 프로 신인으로서 필로스 오픈에서 첫 승을 올렸다. 하지만 두 번째 우승을 하기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2013년 헤럴드 KYJ 투어챔피언십에서 2승째를 기록했다. 평소 연습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았던 그는 당시 우승 인터뷰에서 “연습을 하지 않아도 우승하는 게 신기하다”는 도발적인 발언을 해 주목을 받았다. 머리를 온통 노랗게 물들이고 카레이싱과 오토바이의 속도감을 즐기던 그는 상무에 입대, 군생활을 하면서 골프를 계속할 수 있었다. 군인 신분으로 우승을 했던 2015년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에서 거수경례로 우승 인사를 한 것은 많은 골프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1년 한 모임에서 현재의 아내를 만난 그는 2019년 8월 인천 드림파크CC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3년 전부터 대회에 동반 출전했다. 자신은 선수로, 아내는 캐디로 나온 것이다.

사실 골프계에선 아내에게 골프레슨을 하지 말아야 하며, 선수들은 아내를 캐디로 쓰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여겨왔다. 서로 상대를 너무나 잘 아는 부부사이인만큼 감정 컨트롤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필드 안팎에서 따뜻한 내조를 받으며 오히려 경기력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필드에서 격려와 질책을 하기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집밥을 챙기주고 헤어스타일까지 관리를 해줬다고 한다.

둘의 애틋한 부부애는 이번 대회 마지막날 경기에서 잘 드러났다. 압박감이 대단히 높은 챔피언조에서 그는 2번 홀(파4) 더블 보기, 3번 홀(파3) 보기로 어렵게 출발했지만, 5번 홀(파4) 버디로 안정감을 찾았다. 13번 홀(파4)에서 2m 버디 퍼트를 넣고는 우승을 확신한 듯 두 팔을 번쩍 들며 기뻐하기도 했다. 아내가 그의 뒤를 받치며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기를 잘 붙잡아 줬기 때문이다. 골프는 스포츠 종목에서도 가장 멘탈이 승부에 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피 말리는 긴장 속에서 선수들은 집중력을 잘 발휘해야 한다. 큰 상금이 걸린 대회나 전통있는 대회일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6년 만에 이룬 허인회의 우승은 캐디 아내와 함께 해서 더욱 남달랐고, 빛이 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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