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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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쯤에는 코로나19의 길고도 어두운 터널을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까. 이미 만신창이가 된 영세 상인들의 삶은 그 자체가 눈물이다. 이 와중에도 상류층의 부는 엄청나게 늘고 있지만 서민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대로 더 장기화 될 경우 과연 우리 사회가 켜켜이 쌓인 갈등과 민심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요 선진국들의 현실은 더 엄중하고 위험하다.

백신 접종률 50%를 넘긴 영국은 12일 기준으로 하루 확진자가 2400여명 수준이다. 인구가 거의 비슷한 우리나라(13일 기준 715명)와 비교하면 3배가 넘는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백신 접종률이 7%를 갓 넘긴 상황이다. 객관적 지표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방역수준은 높은 편이다. 세계 백신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미국은 백신 접종률이 50%에 육박하고 있지만 13일 기준 하루 확진자가 무려 3만 5천여명에 이른다. 일본도 6천여명을 웃돌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올림픽을 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여전히 난맥상이다. 이렇게 굳이 외국 사례를 언급하는 것은 좀 더 객관적으로 우리 현실을 보자는 뜻이다. 여기에 어떤 이념이나 정파성이 개입될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우리나라는 팬데믹을 극복하는 모범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백신 접종률이 걱정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정부를 믿고 갈 수밖에 없다. 그 연장에서 오는 11월쯤엔 집단면역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백신 공급 물량도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정부의 발표다. 이에 따라 오는 7월부터는 완화된 거리두기 개편안이 적용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정부의 총력 대응과 이에 국민이 솔선수범하면서 나타나는 반가운 소식이다. 물론 아직 낙관은 이르다. 언제 어떤 돌발변수가 불거질지 아무도 모른다. 국민과 정부 모두 조금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라 하겠다.

그러나 이 와중에 코로나19 백신을 정치 이슈로 쟁점화 시키면서 자신들의 정략으로 삼는 일부 정치꾼들의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불쾌함을 넘어 분노할 일이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느닷없이 백신을 구하러 가겠다며 미국으로 떠났다가 얼마 전 귀국했다. 백신은 이미 세계 각 나라들과의 계약을 통해 해당 제약사가 공급하고 있다. 그 마저도 제약사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해당 정부의 양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부 측 인사도 아닌 일개 개인이 알음알음으로 사고파는 그런 제품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때 국무총리까지 지냈던 황 전 대표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의 노력까지 비난하면서 마치 무슨 대단한 일을 하러 가는 것처럼 언론 플레이까지 했다.

그런 황교안 전 대표가 귀국해서 던진 말은 더 충격적이다. 미국 측 인사에게 백신 1000만회 분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 단체장 소속인 서울․부산․제주 등이라도 한미동맹의 상징적 차원에서 지원을 부탁했다고 한다. 귀를 의심하고 싶었다. 백신마저 국내정치의 수단으로 삼고 이를 통해 국민과 지역을 편 가르기 하면서 우리 정부의 방역정책에 구멍을 내려는 고약한 심보가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하다하다 안 되니 이제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백신을 놓고서도 개인 정치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매우 저급하고도 몰상식한 언행이 아닐 수 없다. 혹여 황 전 대표의 그런 황당한 요구에 미국 측 인사가 응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그걸로 끝이다. 특정 인사의 개인적 부탁으로 백신을 주고받는 미국이라면 거기엔 이미 정부가 붕괴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들여온 백신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또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여당 백신’과 ‘야당 백신’으로 나뉘고, 또 진영 간 국론을 끝없이 분열시키는 ‘독극물’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걸 ‘성과’라고, 그런 행태를 ‘자랑’이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황교안 전 대표의 모습에서 무지와 무치, 그리고 무개념의 ‘공포’를 느꼈다면 필자만의 과잉 반응일까.

하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필자와 같은 분노가 터졌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페이스북에 “백신까지 편 가르기 도구로 이용하는가”라며 황교안 전 대표를 질타하는 목소리를 냈다. 장 의원은 “아무리 대권 행보가 급했다지만 미국까지 가서 국민의힘 단체장이 있는 서울․부산․제주라도 백신을 달라니, 국민의힘 단체장이 있는 국민만 국민이냐”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장 의원의 지적은 매섭고도 신선하다. 국민의힘에도 여전히 희망이 살아 있음을 알리는 천둥 같은 소리도 들린다. 장 의원의 지적을 빌리자면 황 전 대표가 대권욕에 눈멀어서 나라 망신에 더해 국민까지 분열시키고 있다는 비판이다. 명색이 차기 대선을 생각하는 정치인 신분이지 않은가. 생각할수록 황 전 대표의 언행은 저급하다 못해 부끄럽고도 참담한 심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황교안 전 대표의 행보와 별개로 국민의힘이 당 차원의 백신외교를 위한 독자행동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백신외교는 우선 정부의 몫이다. 엄청난 비용과 외교관계, 여기에 더해서 과학과 국민안전까지 결합돼 있는 총체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이 당 저 당이 마치 쇼핑이나 로비를 하듯이 사들고 올 수 있는 그런 물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일행은 미국으로 떠났다. 내 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거기서 이뤄질 수도 있는 백신외교의 성과가 정치적 부담이 됐을까. 그래서 일찌감치 그 성과를 가로채거나 아니면 물타기 하려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진정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지원하려고 간 것일까. 이 대목에서도 장제원 의원의 일갈이 가슴을 때린다. “백신으로 장난 하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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