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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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전격 도입예정인 고교학점제에선 학생이 진로에 맞는 다양한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해 들을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 과목이 없으면 개설도 요구할 수 있다. 국어, 영어, 수학, 통합사회, 통합과학 등 전통적인 입시 과목 외에 사진, 목공, 뮤지컬, 연극, 웹툰, 로봇, AI, 소설 쓰기 등 새로운 과목이 생길 수 있다. 기존 교사가 가르칠 수 없는 이런 새로운 과목은 교사 자격증이 없는 ‘학교 밖 전문가’를 활용하면 된다는 게 교육부의 생각이다. 지금의 교권 추락이 교육부의 교사 전문성에 대한 낮은 시각이 쌓인 탓임을 알 수 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에는 기간제 교사도 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자격증이 없는 강사를 채용할 경우는 교사와 함께 수업하고 강사는 교사처럼 단독 수업·평가·기록 등은 할 수 없다. 교육부의 꼼수에 화답하듯 교원자격증 없는 사람도 단독으로 수업·평가·기록할 수 있는 기간제 교사로 채용하도록 하자는 법안이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에 의해 발의됐다. 이 법안에 대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무자격 기간제교사 도입’ 정책이라며 교사의 95%가 이 법을 반대한다는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교사들은 반대 이유로 ‘교육에 대한 특수성을 무시한 발상’ ‘전문지식을 가진 것만으로 교사 역할을 할 수 없다’ ‘정규 교원 자격이라는 최소한의 검증이 필요하다’ ‘무자격자가 가르친다면 학교가 학원과 다를 바 없다’라고 지적한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려면 학교별로 최소한 20~30여명의 강사가 필요하다. 전국적으로 따지면 필요한 강사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교원자격증을 가진 교사로는 감당이 안 되니 ‘외부 전문가’로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실상은 구인 대란을 막으려는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외부 강사가 학교별로 20~30명씩 늘어나면 학교 비정규직처럼 이들도 당연히 노조를 만들고 세력화한다. 이들이 몇 년 전처럼 “강사로는 신분보장이 안돼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고 교육의 질이 떨어져 그 피해는 학생에게 간다”며 정규교사로 전환해달라고 학생과 수업을 볼모로 시위를 하면 학교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인 교원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날벼락이고 정교사 대 기간제교사·강사의 갈라치기가 재현될 수 있다.

교사의 반발을 인식해 교육부는 박사학위 소지자로 2년 이상의 교육경력이 있거나, 특정 분야 전문가로 교육감이 정하는 자격 기준에 해당하는 자로 한정하고 채용 뒤에도 보수 교육을 받도록 한다고 한다. 교육부 말대로 박사학위 소지자, 능력 있는 전문가가 열악한 처우를 받으며 기간제교사로 올 사람은 없다. 교육부 말은 공수표에 불과하고 단순히 학벌만 가진 무능한 사람이 인맥으로 채용될 가능성이 크고, 단기 알바 자리로 생각하는 무자격 교사가 학교별로 20~30명씩 늘어난다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이런 실상을 모르는 학부모의 많은 비율이 외부 전문가를 교사로 채용하는 방안에 찬성한다고 한다. 당연히 외부 전문가가 정당한 교원 자격을 취득해 학교로 오는 건 대환영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전문가라고 학생을 가르쳐도 된다는 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병원에서 의사 대신 수술을 하는 의료기 영업사원의 행위에는 온 국민이 분노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병원에서 무자격자가 수술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이고 자칫하면 한 학생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더 중요한 일임을 생각하지 않으니 안타깝다.

교사는 전문직이다. 단순히 지식 전달자가 아닌 4년간 전문적인 교사 양성 커리큘럼에 맞춰 공부해 공정한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필요한 교사가 있다면 시대에 맞게 교사 양성 학과를 늘리거나 부전공 과목을 늘려 제대로 된 교사를 양성하는 게 부작용을 줄이는 길이다. 정말로 능력 있는 외부 전문가가 자신의 연봉을 포기하고 교사가 되겠다면 최소한 교원 임용고사에 상응하는 검증절차를 거쳐야 한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보다 학교 업무와 학생 상담, 지도 등의 비중이 더 높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전문가라고 교사로서 역할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교실에서 며칠만 수업해보면 두 손 두 발 들고 도망갈 사람이 많다. 교사의 일부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외부 전문가에게 교직을 개방하자고 주장하면 굳이 사범대학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관련 학과를 개설할 수 있도록 교수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협조해야 사범대학이 빨리 변한다. 사명감 있는 교사를 만나 학생의 인생이 바뀌는 건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다. 준비 안 된 고교학점제를 무리하게 도입하며 억지로 법을 바꿔 무자격 교사를 채용하는 건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불공정만 늘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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