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not caption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앨범이 발표되자마자 사탄 논란이 일어났다. 4집 앨범 수록곡 ‘교실 이데아’를 거꾸로 들으면 기괴한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언뜻 “피가 모자라”라는 말이다.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다. 결국 서태지가 이단 종교인으로 백마스킹(Backmasking) 했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소리나 메시지를 재생 반대 방향으로 녹음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런 말을 듣고 거꾸로 들으면 정말 피가 모자란다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음악에서 특정한 패턴을 읽으려는 습성을 개그 소재로 삼은 것이 2000년대의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뮤직 토크’였다. 팝송의 일부를 음역(音譯)해서 우리의 일상 문장이나 구어로 바꾸어 웃음을 주었는데 가장 히트작은 ‘오빠 만세(Eric Carmen의 All by My Self)’였다.

일정한 패턴을 읽으려는 습성은 비단 이런 음악 분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인간은 어떤 패턴을 만들고 해석해서 본질을 파악하려고 해왔다. 원시인들도 하늘의 구름과 바다의 파도 형상을 보고 나름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을 했고, 이를 절대자나 신의 계시라고 생각했으며, 이를 종교만이 아니라 국가 통치에 활용하려 했다. 오늘날에도 화성이나 달의 사진을 보고 인간의 얼굴 모습이나 심지어 종교 지도자의 얼굴로 해석하는 사례들을 볼 수가 있다. 이는 파레이돌리아(pareidolia)의 전형이다.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서 특정한 패턴을 인지하고 이것에 심적으로 반응하는 현상이다. 심리학만이 아니라 미술이나 사진 등 예술분야에서도 이 변상증(變像症)에 관심을 보이고는 한다. 사물과 대상에 대해 의미부여를 하는 존재인 인간의 특징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전문적인 일로 삼는 경우에는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 FBI 분석관들은 끊임없이 프로파일링을 통해 패턴을 만들고 해석하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적절하게 적용되어 성과를 낳기도 하지만, 인위적으로 없는 패턴을 만들다보면 죄없는 사람을 감옥에 보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점은 전문가들이나 언론에서도 흔히 저지를 수 있으며 요즘 같은 SNS의 쏠림 현상으로 인해 특정한 패턴이 진실인 것으로 둔갑할 수 있다. 인지 심리학에서는 클러스터 착각(Cluster illsuion)이라며 인지적 편향(cognitive bias)이라고 규정한다. 우연히 발생한 사안을 마치 일정한 패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정한 패턴을 인식한 이들은 자신들이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진실을 알게 됐다고 뿌듯해하고 흥분감을 느낀다. 물론 그러한 흥분감은 도파민을 분비시켜 쾌락중독을 일으키게 할 수 있다.

최근 한 간편식과 편의점 디자인에 메갈, 일베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기업과 디자이너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했는데도 패턴을 메갈이나 일베를 상징하는 이미지 기호라는 주장은 더욱 거셌다. 특히 특정 단어를 거꾸로 읽으면 남성 혐오 단어가 된다고 지적하는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거꾸로 듣기를 연상시킨다. 관련 기업들은 심지어 비슷한 기호들을 찾아 삭제하고 있다.

최근 방송인 박나래의 유튜브 방송에 대해 공연 음란죄도 아니고 성희롱 죄를 들어 네티즌들이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일도 있었고 실제 경찰이 수사를 개시했다고 한다. 인형을 대상으로 남성 혐오를 조장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떤 특정 패턴을 읽고 싶은 파레이돌리아 심리를 읽을 수 있다. 과거의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한 무리한 해석이 백래시 즉 역풍을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패턴 만들기가 어제오늘은 아니지만 우리는 하늘과 바다의 모양을 보고 신의 계시라며 할 일을 안 하거나 외면한 원시인이 되지 않아야 한다. 더구나 종족 간에 그러한 해석을 두고 일어나는 극단적인 대결은 서로를 상하게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