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는

유준화

민들레 하얀 꽃씨가 되어 있을지 몰라
마을 어귀에 느티나무가 되어 서 있을지도 몰라
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도는
단풍나무 씨가 되어 있을지도 몰라
왕거미가 되어 하늘에 투망을 던지고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어느 더운 날
빗방울이 되어 네 우산 위로 떨어질지도 몰라

그냥 그렇게 모르는 척
네 곁에 있을지도 몰라

 

 

[시평]

우리에게 ‘다음 생’이란 게 있을까.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에 의한, 매우 엄격한 종교적 계율을 지키므로 맞이하는 ‘다음 생’이란 것이 있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들은 간혹 이러한 윤회에 의한 다음 생을 희망하기도 한다. 내가 다시 태어나도 나는 당신과 결혼을 하겠다는 등의 어쭙잖은 소망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이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확신보다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희망의 단순한 전언일 뿐이다.

시에서의 화자는 다음 생에 되고자 하는 모습을 다양하게 변주시키고 있다. 민들레 하얀 꽃씨가 되어 가장 자유롭게 풀풀 나르고 싶기도 하고, 마을 어귀에 느티나무가 되어 묵묵히 세상을 바라보고 싶기도 하고, 단풍나무 씨가 되어 바람 타고 빙빙 도는, 그런 삶이 되고도 싶기도 하고, 왕거미가 되어 하늘에 투망을 던지고 기약 없이 기다리고 싶기도 하고, 빗방울이 되어 네 우산 위로 후드득 떨어지고 싶기도 하다.

민들레 꽃씨가 되던, 느티나무가 되던, 단풍나무 씨가 되던, 왕거미가 되던, 빗방울이 되던, 그 무엇이 되던, 결국은 ‘너’의 곁에 그냥 그렇게 모르는 척 있고 싶은 것이 화자의 소망이다. 지금 이 생과 같이 다음 생에도. 그렇다. 다음 생이란 다름 아닌 지금 생의 연속과 변주이기를 세상의 사람들은 희망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지금의 생에서 맞고 있는 아쉬움을 이어나가고, 그러므로 보다 나은 생으로 변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실은 우리 모두의 ‘다음 생’을 소망하고 또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리라.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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