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맞은 위기의 한국개신교

대재난 앞에서 교회가 보일 모습은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지난해 봄부터 꼬박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한국교회가 그동안 한국사회 내에서 가지고 있던 신망과 목소리 그 자리가 송두리째 흔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전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 등이 주도한 광화문 ‘문재인 퇴진 국민대회’와 사랑제일교회의 대면 예배 강행부터 선교단체 인터콥이 경북 상주 BTS열방센터에서 주최한 대규모 집회까지 다수 목회자와 교인들이 정부 방역 지침을 무리한채 예배와 모임을 진행하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을 일으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뿐 아니라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DNA가 조작된다” “감염병 예방책으로 정부가 교회를 탄압하려 한다” 등 설교와 같은 공식 석상에서 목사들이 퍼뜨린 가짜뉴스와 음모론은 정부의 방역 정책에 큰 걸림돌로 지목되기도 했다.

개신교가 코로나19 사태에서 위험집단으로 낙인 찍힌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4일 개신교단체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웨이브레터 기고글에서 신하영 세명대 교수는 개신교가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이유로 “코로나19로 고개를 든 배제와 혐오에 대해 한국교회가 보여준 입장”을 꼽았다. 그는 “팬데믹 선언이 이뤄지면서 이 병은 전 인류가 헤쳐 나가야 할 공존공영의 문제가 됐음에도 여전히 교회에선 ‘우한 폐렴과 중국 기독교 박해-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카드뉴스가 생성돼 교회 내 카톡방으로 떠돌기까지 했다”며 “나름의 과학적 추론이 아닌 시진핑 정권의 중국에서 기독교인이 겪는 박해, 한국인 선교사의 강제 추방이 우한폐렴이라는 재앙의 원인으로 등장했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박해하는 바로가 겪은 열가지 재앙으로 인류의 팬데믹이 둔갑하는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신 교수에 따르면 한 목회자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중국 시진핑이 기독교를 탄압하는데 우한 폐렴은 애굽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같은 느낌이 든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수많은 목사와 교계 지도자들은 코로나19를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해석했다. 그 논조는 기독교를 탄압하는 중국의 공산당 정권 비판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혐오표현이 일상적 표현으로 자리 잡고 그에 대한 비판의식이 사라지는 순간 혐오표현의 대상, 소재가 되는 집단과 개인은 언제든 공격의 대상이 된다”고 경계했다.

신 교수는 재난 앞에서 교계가 보여준 ‘약자에 대한 혐오, 방역수칙 거부, 사회 공공선과의 대치’ 등과 같은 모습 때문에 적지 않은 신자들이 실망하고 교회를 떠났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교회는 재난 속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했을까. 신 교수는 인류사에 가장 무서운 전염병으로 손꼽히는 중세시대 흑사병 창궐 시기와 맞물려 활동했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를 언급했다. 당시 중세시대 사람들의 인식구조, 가치관을 지배하던 것은 교회였다. 교회가 전염병을 해석하는 방식은 곧 사회의 인식이 됐을 만큼 전염병 시기 교회의 역할은 지대했다. 당시 흑사병의 징후로 출현 반점을 ‘하나님의 심판의 징표(God’s Mark)’라고 부를 정도로 흑사병을 ‘신의 심판’으로 여기는 일이 보편적이었다.

루터는 이 시기 ‘사람과 장소를 피하라’고 이야기했다. 다음은 루터가 남긴 글이다.

“만일 집에 불이 났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물에 빠졌을 때 수영하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익사해야 하는가? 다리가 부러졌을 때 의사의 도움을 받지 말고 ‘이건 하나님의 심판이야. 저절로 나을 때까지 참고 버텨야 해’라고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배고프고 목마를 때 왜 당신은 먹고 마시는가?”

“나는 하나님께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를 지켜달라고 간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소독하여 공기를 정화할 것이고, 약을 지어 먹을 것이다. 나는 내가 꼭 가야 할 장소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여, 나와 이웃 간의 감염을 예방할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무지와 태만으로 이웃이 죽임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기 원하신다면, 나는 당연히 죽게 되겠지만 적어도 내가 내 자신의 죽음이나 이웃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누구든 어떤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신 교수는 루터의 이러한 이웃 사랑 실천을 오늘날 한국교회가 본받아야 할 정신이라고 봤다.더 나아가 코로나19로 더 심한 차별을 겪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교회가 돌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약과 신약에 나타나던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만들기에 앞장섰던 신앙 공동체의 모습은, 성문법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고대시대에 이례적인 약자 보호의 모습이었다”며 “예수님은 늘 사회적 약자의 편에 계셨고 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오랜 세월동안 사회적 약자 편에서 이들을 보호해왔다. 돌봄의 흐름이 차단돼 고통 받는 이들이 제도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이때에 교회는 돌봄 제공자로 다시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