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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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으로 80년 초기 삼성박물관(현 리움미술관)의 관장이 됐던 고 이종석 중앙일보 문화부장은 고 이병철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다. 문화재 전문기자로 기사를 많이 다뤘던 이 부장의 능력을 인정해 파격적으로 기용했던 것이다.

필자와도 여러 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원로교수들과의 회식자리였다. 유머러스한 그는 항상 웃고 있는 스타일이었다.

특종의식이 강했던 그는 단국대 정영호 박사(고인)와 절친으로 학술조사 현장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이 부장은 1978년 발견된 단양 적성비 현장에 내려와 제일 먼저 특종을 했다. 특종 시상금을 받은 뒤 을지로에 모 일식집에서 대접을 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이 부장은 학구파로 당시 박사학위 코스를 받고 있었으며 학계의 원로 교수들과 친밀하게 지냈다. 그가 관장 재직 시 컬렉션에서 구입한 고대 불교유물이 많았는데 학자들의 정밀한 감정을 거친 것들이었다.

삼성은 이 시기 해외에 나가 있는 문화재를 환류 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는 이병철 회장의 집념이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한 경매회사에 나온 고려불화가 이 시기 들여져 왔다. 일본과 해외에 나가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회화, 고려불화가 우리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삼성은 이후에도 일본에 나가 있는 문화재 환수에 의욕을 보였다. 특히 고려불화에 대한 환수에 의욕을 보였다. 이 시기 고려불화 중 가장 큰 국보급 수월관음도(일본 鏡神寺 소장)가 경매에 붙여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예상 가격은 1백억원. 삼성이 본격적으로 응찰할 기미를 보였다.

그런데 일본 측에서 갑자기 경매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에서 사들이면 한반도에서 수탈한 문화재를 천문학적 값에 팔았다는 언론의 비난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불화는 아직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이 부장 재직 때 사들인 문화재 목록은 알지 못한다. 다만 금동불상 등 금속제 유물에 대해서는 지금도 당시 감정을 담당했던 황수영 전 동국대 총장, 정영호 박사 등의 높은 안목과 식견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현재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소장품은 국보 30점, 보물 82점을 비롯 모두 1만점 이상이나 된다. 감정가만 2조 5천억∼3조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의 상속세 자진 신고·납부 기한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세계적 미술관급 규모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건희 컬렉션’의 일부가 기증 된다고 발표됐다. 그런데 미술품 1만점 이상은 국립현대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지방 미술관 등에 나눠 기증한다는 것이다.

삼성이 3대에 걸쳐 수장한 문화재나 미술품들이 공익 재산이 된다는 것에는 박수를 보낼 일이다. 그러나 한국제일의 미술 문화공간이 문을 닫고 소장품이 전리품처럼 전국으로 쪼개진다는 것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리움’이란 이름은 한국 미술계 부동의 권위를 뜻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수많은 외국 예술가 지식인들이 제일먼저 찾는 곳이다. 이런 한국의 긍지를 분해한다니… 한국의 옛 도자기를 가장 많이 수장하고 있는 일본 오사카 아다까 컬렉션을 보자. 소장자가 시에 기증, 지금은 시립박물관이 됐어도 그대로 존속돼 창립자의 의지가 살아있다.

분해위기에 있는 리움의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 초창기 미술관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 숨진 언론인 출신 학자의 모습과,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신 원로 스승들이 생각나 적어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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