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 하면 된다.” 인류에게 평화실현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게 한 이가 있다. 바로 유엔등록 평화단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다. 그는 “전쟁없는 평화세상을 이루라”는 천명(天命)을 받들어 여든이 넘은 나이에 31차에 걸쳐 지구촌 평화순방에 나섰다. 국내에선 몰라주고 알아도 애써 외면하지만 이만희 대표는 분명 세계적 차원의 인재다. 어느 한 나라가 아니라 온 세계가 참된 평화운동가로 인정한 인재가 대한민국에서 났고 대한민국을 빛내고 있어도 자기 생각에 염색되고 혜안이 없어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평화순방 동안 이만희 대표가 받은 각종 상패와 증서 등을 통해 세계가 그를 어떻게 여기고 주목해 왔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피고 확인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또 앞으로 전개될 그의 평화행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남아공 종교포럼 명의로 제작돼 음베콰 회장이 이 대표에게 전달한 이 대표의 평화 행적에 대한 공로상.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30
남아공 종교포럼 명의로 제작돼 음베콰 회장이 이 대표에게 전달한 이 대표의 평화 행적에 대한 공로상.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30

 

남아공 종교포럼 명의로 제작돼 음베콰 회장이 이 대표에게 전달한 감사패.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30
남아공 종교포럼 명의로 제작돼 음베콰 회장이 이 대표에게 전달한 감사패.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30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 자료공개<23>

비숍 템플톤 말리쏠 음베콰 목사, 이만희 대표 평화행보에 놀라

2018년 HWPL 행사 참석… 평화업적 감동해 공로상 제작

29차 평화순방 소식 듣고 일정 중 공로상‧감사패 직접 전달해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종교지도자라면 종교인으로서 인류의 평화를 위해 대가 없이 한몸을 헌신해 일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또 교리와 색채가 너무도 달라 교차점을 찾지 못하는 종교 간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거의 꿈에 가깝다. 이 때문에 종교 평화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종교지도자들이 노력했지만, 뚜렷한 결실을 내지 못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종교 간 평화를 원하고, 이를 갈망해왔던 종교지도자는 종교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 인류 평화를 이루는 결실을 만들어내는 소식에 유독 눈이 밝고 귀가 열려 있게 마련이다. 이런 이들은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와 평화사절단의 업적과 공로를 접하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특히나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전 세계를 누비며 평화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이 대표를 만나면 절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인다.

2018년 8월 13일 성공회 목회자인 비숍 템플톤 말리쏠 음베콰 남아공 종교포럼 회장이 이만희 대표에게 공로상과 감사패를 직접 전달했다. 이날 음베콰 회장이 이 대표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30
2018년 8월 13일 성공회 목회자인 비숍 템플톤 말리쏠 음베콰 남아공 종교포럼 회장이 이만희 대표에게 공로상과 감사패를 직접 전달했다. 이날 음베콰 회장이 이 대표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30

◆남아공 목회자, 이 대표에 감동한 이유

남아프리카 종교포럼 비숍 템플톤 말리쏠 음베콰(Bishop Templeton Malixole Mbekwa) 회장도 그러했다. 성공회 목사인 음베콰 회장은 자신의 받은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대표의 평화 업적을 세세하게 기록해 공로상을 제작했고, 2018년 8월 13일 제29차 평화순방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 이 대표를 만나 직접 이 공로상과 감사패를 전달했다.

공로상에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한 HWPL의 업적들이 조목조목 나열돼 명시됐다.

2018년 8월 당시 기준으로 ▲2010년 8월 15일 조국통일선언문 공표 ▲2013년 5월 25일 세계평화선언문 공표 ▲2014년 1월 24일 민다나오 평화협정 및 평화 걷기 대회 개최 ▲2014~2017년까지 4차에 걸친 평화 만국회의 ▲2016년 3월 14일 지구촌전쟁종식평화선언문(DPCW 10조 38항) 공표 ▲2012~2018년까지 29차례에 걸친 평화순방 등의 평화행보를 세세하게 공로 업적으로 기록했다. 이는 인류사회의 평화 번영과 전쟁 종식을 위해 일해온 이 대표의 공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 위한 공로상이었다.

음베콰 회장이 전달한 감사패에는 특히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이룬 평화 업적에 대해 감사하는 의미가 담겼다.

비숍 템플톤 말리쏠 음베콰 목사는 남아공 성공회 소속이며, 지역사회 봉사자로 잘 알려져 있다. 웨스턴 케이프 아프리카 국민의회 목사를 역임했으며, ANC 내 목사직을 만든 설립자다. 남아공 정부 명에 의한 사회적 화합 프로젝트 진행하고 있으며, 국제적 기독교 단체와 청년들과 일하며 범종교 활동을 통해 평화 전하고 있다.

2018년 HWPL과 인연이 닿았고, 그해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3월 14일 HWPL 행사에 참석했고, 이어 5.25세계평화선언문 공표 기념일 행사에도 참석했다. 이후 음베콰 회장은 종교 포럼 임원들을 설득해 단체의 이름으로 이 대표에 대한 공로상을 제작했다. 또 평화순방 일정 중 종교포럼 관련 인사 약 100여명을 HWPL에 소개해주는 등 HWPL의 평화 행사에 꾸준히 참여하며 이 대표의 평화 행보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남아공 종교 포럼과 HWPL의 MOU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8월 13일 남아공 케이프타운 웨스턴호텔에서 ‘아프리카 평화지도자 회의-종교연합사무실 세션’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 포럼에서 남아공 종교 지도자들이 이 대표에게 감사패와 공로상, 선물들을 증정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30
2018년 8월 13일 남아공 케이프타운 웨스턴호텔에서 ‘아프리카 평화지도자 회의-종교연합사무실 세션’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 포럼에서 남아공 종교 지도자들이 이 대표에게 감사패와 공로상, 선물들을 증정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4.30

◆ HWPL의 제29차 평화순방 남아공 종교평화 행보

공로상과 감사패가 전달된 이날 이만희 대표와 평화사절단은 평화순방 일정 중 한 프로그램으로 남아공 케이프타운 웨스턴호텔에서 열린 ‘아프리카 평화지도자 회의: 종교연합사무실 세션’ 포럼에 참석하고 있었다.

HWPL의 종교연합사무실은 종교로 인한 분쟁을 종식짓는 방법은 오직 믿을만한 경서를 기준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종교 간 경서비교토론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종교연합사무실은 2020년 12월 말 기준 전 세계 129개국 253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이만희 대표는 이날 포럼에 기조강연자로 나서 그간의 평화행보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이 대표는 “인류 세계를 위해서 이 평화 일을 확실히 했다는 이것은 하늘이 증명하고 이 땅도 보고 있다”고 단언했다. 이어 “이 자리에 모인 종교지도자 여러분들, 정말 경서 비교확인 작업을 확실히 해달라”며 “우리는 지구촌이라는 그릇 안에 함께 담겨 있는 사람들이다. 하니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끼쳐주고 바른길로 인도하는 여러분들이 됐으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흠을 잡을 수 없는 이 대표의 강연에 참석 종교인들은 열광했다. 포럼장을 가득 메운 종교인들은 이 대표의 강연이 끝나자 모두 의자에서 일어나 검지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들고 밝게 웃으며 ‘WE ARE ONE’을 외치면서 환호했다. 포럼장은 종교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두가 하나된 평화의 장이 됐다.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에는 아프리카 13개국 24곳 언론사가 참석해 열띤 취재에 나서는 등 현지에서의 관심도를 방증했다. 이 대표는 HWPL의 평화행보의 목적지가 어디냐는 현지 기자의 질문에 “온 세계가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이뤄져야, 거기가 목적지”라고 강조했다.

ⓒ천지일보 2021.4.30
ⓒ천지일보 2021.4.30

◆ 남아공의 종교와 인종정책

남아공은 황금과 다이아몬드의 나라이다. 20세기 초 백인들이 황금을 얻기 위해 이주해 현지 흑인 원주민을 채굴작업에 동원시켜 혹사시키며 백인 지배 구조를 공고히했다. 이 과정에서 인종 차별적 교육을 진행했다. 또 1945년 아파르트헤이트로 불리는 인종차별 정책을 종교적, 법적으로 정당화했다. 남아공에 이주한 백인의 다수는 네덜란드개혁교회 신자들이었다.

이들은 바벨탑 사건을 신의 인종분리 정책으로 설명하는 등 성경을 악용해 자신들이 지배구조를 정당화했다. 이어 1961년 인종차별법안을 제정하고 필요할 때마다 개정해 차별을 제도화했다. 결국 남아공에서 기독교는 식민주의자들이 침략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된 셈이었다.

부당한 차별과 지배에 저항한 흑인들은 1961년 샤프빌 항쟁, 1976년 소웨토 항쟁, 1986년 인민항쟁 등 폭력항쟁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이후 일부 기독교인들은 흑인과 유색인종 차별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1949년 남아프리카 교회협의회(SACC)는 평등과 동등한 기회와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선언했다. 1980년대에는 흑인 성직자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 베이어 나우데, 신학자 프랭크 치카네 등 진보적인 민중 신학자들이 ‘신 앞에서 모든 사람은 동등한 존재’라는 신학적 재해석으로 인종차별저항조직들에 힘을 실어줬다.

이같은 투쟁 끝에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남아공에서 최초의 흑인(아프리카민족회의)과 백인(국민당) 연합 정부가 수립됐다. 이후 인종 분리 정책은 불법화됐다. 그렇지만 인종차별이 금지된 후에도 남아공에는 굳어진 관습으로 인종차별 악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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